국민의힘당 9.2 강령 비판

보수 가치의 실종, 경제민주화의 과잉

김대호 승인 2021.06.22 10:09 의견 0

한국에서는 정당의 강령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거의 읽지 않는다.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령은 당의 주류나 당권파의 정치적 생각의 집약이다. 당의 입법, 예산, 이슈(투쟁), 메시지를 둘러싼 노선 투쟁이 벌어질 때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소환되지는 않지만 주류나 당권파의 정견의 집약이기에 입법, 예산, 투쟁, 메시지 등에 포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강령이 부실하면 법안, 정책, 예산,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메시지와 시민운동까지 다 부실하게 된다. 강령이 종합적, 체계적이지 못하면 이곳을 때리면 저 곳이 튀어나오는 두더지잡기 놀이 정치, 다람쥐 쳇바퀴 돌기 정책, 곁가지 잡고 용쓰는 시민운동, 공(이슈)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싸우는 동네축구식 정치 행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강령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종합적, 압축적 진단과 대안이기에 기록된 것만 가지고 시시비비하면 안 된다. 기록되지 않은 것, 누락된 것이 오히려 강령의 특징과 한계를 더 정확하게 말해 준다.


강령은 대한민국과 정당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 마디로 위치〮방향 감각을 곤두세워 읽어야 한다. 이 감각들이 곤두서 있어야 꼭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과 쓸데없는 것들이 길게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변화한 현실과 시대적 요구(시대정신)를 알아야 시대착오적 가치를 감지할 수 있다. 강령은 무엇을 서술하는지, 이를 어떤 개념과 논리로 서술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X



2020년 9월 2일 발표된 국민의힘 강령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은 전문과 ‘우리의 믿음’ 10개조와 ‘기본정책=10대 약속’의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강령의 전문과 ‘믿음’에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보편타당한 주장 중에서 극히 일부만 선별=강조할 수밖에 없기에, 중시하는 가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강령은 과거 보수 계열 정당과 차별화를 추구하다 보니 의미심장한 주장이 많다. 전문에서는 경제민주화와 ‘조국 근대화 정신’과 ‘민주화운동 정신’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헌법 전문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말이 강령에서는 ‘3.1독립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로 되어 있다. 법통이라는 말은 정신에 가깝다면 정통성은 다른 존재(독립운동 세력 등)의 통치 정당성에 대한 부정(배
타성)을 의미하기에 작지 않은 변화이다. ‘민주화운동 정신’을 언급하면서 5〮18과 6〮10 항쟁을 넣다 보니 논란 희석 차원 또는 지역 차별, 홀대를 의식하여 대구, 대전, 마산, 부산의 민주화운동을 넣게 되었다. ‘민주화운동 정신’을 길게 서술하다 보니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조국 근대화 정신’이 들어가게 되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 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운동 정신’
을 이어간다.”


‘민주화운동 정신’과 ‘조국 근대화 정신’이 길게 나열되다 보니 대한민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정신인 건국(투쟁) 정신과 헌법 정신이 상대적으로 홀대 받게 되었다. 사실 헌법이나 정당의 강령에 다양한 얼굴을 가진 역사적 사건을 넣는 것, 그래서 다른 해석을 불허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운동이나 전쟁 등 역사적 사건 없이 성립된 국가는 없지만, 그 역사적 사건을 헌법 전문에 실은 현대 민주 국가는 별로 없는 이유이다.


‘우리의 믿음’ 10개조는 경제자유화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다 보니 자유에 대한 우려나 경계심을 강하게 피력하였다.


“4. 우리는 (...)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 다고 믿는다.”, “7. 우리는 (...)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는 헌법 전문에도 있고, 국민교육헌장에도 있다. 그런데 문 정부 출범 이후 국민기본권(자유권, 재산권)과 경제 활동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는 말은 적어도 보수 정당의 강령에 들어갈 말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생명, 안전, 자유, 재산인데 국가주의, 전체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는 문 정부로 인해 자유와 재산권이 심각하게 억압받는 상황에서 문 정부가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인 생명과 안전을 덩달아 강조하는 것 역시 보수 정당의 강령답지 않다.


9.2 강령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이자 보수의 핵심 가치인 '자유'에 대한 대접이 너무 소홀하다.


“9. 우리는 정치가 정직하고 겸손해야 하며 모든 권력은 분립되고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 정치의 소명이나 패악에 비추어 보면 너무 안이한, 하나마나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정직과 겸손은 정치뿐 아니라 공직자나 권력 기관 등 모든 인간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정치 개혁 관련 선언은 ‘5-1 (국민과 함께 만드는정치 개혁)’에도 서술되어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를 대폭 축소한다. (...) 정부 부처에 대응하는 예비 내각을 당내에 구성하여 (...) 당론 투표는.... 최소화하며 (...) ‘지방의회 청년 의무 공천’, ‘주요 선거 피선거권 연령 인
하’ 등 정치 개혁 과제를 법제화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 대폭 축소’는 필요한 개혁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 (중앙) 행정부, 국회, 법원 등 국가기관과 법령에 개인과 기업과 사회 등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권한은 별다른 견제 감시 장치도 없고, 이 권력을 휘두르는 공직자를 선출하고 임용하고, 교육 훈련하는 시스템은 너무나 부실하다. 요컨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면 대통령의 권한은 다소 축소되지만, 그 권한은 다른 국가기관이 받아 휘두른다는 것이다. 삼권 분립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의) 권력 기관에 대한 종적(아래로부터의 통제), 횡적(권력 기관 상호간) 견제〮균형 장치가 잘 작동하도록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힘과 지혜로 자유(선택)와 권리를 지킨다는 자유 정신을 기반으로, 비용 편익을 엄밀히 따진 계약에 의해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보충성 원칙을 중심으로, 보편타당한 법에 의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위임하고 의무와 부담을 기꺼이 받아 안으며, 그 결과에 책임지도록 국가 체제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보충성 원칙은 국가와 시장·사회 간에도, 주권자와 대리인 간에도, 개인(주민) 마을(타운)과 지방정부 간에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에도, 주권국가와 국제기구 간에도 관철되어야 한다.


강령의 ‘믿음’에서는 한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주된 위협을 국가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에서 찾는다.


“2. 우리는 권위주의를 거부하며,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방향(주된 대립물) 착오는 정치 분야에서는 국가가 아닌 대통령의 과도한 권능에 의해 민주주의가 뒤틀린다는 생각으로,경제 분야에서는 국가가 아닌 재벌〮대기업에 의해 시장경제가 뒤틀린다는 생각으로 펼쳐진다. 그 결과가 경제자유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경제민주화=경제의 정치화를 핵심 가치로 놓는 것이다.


예비 내각, 당론 투표 최소화, 청년 의무 공천 등은 정당 개혁사항으로 입법 사항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차대한 정치 개혁과 정당 개혁 과제들 중에서 참으로 소소한 것들이다. 물론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청년 의무 공천’과 ‘여성 우대(공천)’은 정치 개혁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데, 9-2 강령에서도 언급되어있다.


“9-1 (양성평등사회의 실질적 구현)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의 경우, 성별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남녀 동수를 지향"하며 “성인지 교육이 현실성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강령에 명기된 ‘청년 우대’와 ‘여성 우대’ 는 결합되어 ‘여성 청년 우대’와 ‘남성 청년 홀대’로 나타났다. 세대나 성에 대한 특별한 우대와 배려는 유권자나 소비자(시장)의 선택 내지 실력에 따른 차이를 무력화하는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 능력이 부족한 여성 엘리트의 지대 추구=불공정한 공직 획득 욕망의 충족 이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양성평등 강령은 ‘9-2(성폭력 없는 사회) 아동〮장애인 등 (...) 약자에 대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중심주의를 확고히 견지’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통용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눈물 내지 주장이 곧 증거라는 것으로써, 무죄 추정의 원칙과 증거 재판주의를 무시하는 등 엄청난 폐해를 낳고 있다.


이제는 20대 남성 청년들이 역차별에 울고 있는데, 양성평등 강령은 강령 작성에 개입한 여성 엘리트의 입김과 김종인의 몇십 년 전의 경험(패턴화된 사고방식)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있다. 이제는 청년, 노년, 미래 세대, 장애인, 외국인(귀화자), 소상공인, 노조,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세대(청년, 노년, 미래 세대 등), 계층, 지역,직능(소상공인, 의사, 간호사, 약사, 소방관 등), 이념(정당 비례), 성적 취향(성소수자), 장애인 대표성은 강령에 명기하지 않으면서 성별 대표성을 명기하는 이유를 물어야 한다. 특정 집단 대표자에 대한 정치적 우대와 배려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다양한 집단 전체를 놓고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도 법의 기본과 원칙을 무너뜨리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9.2 강령은 보수자유우파 정당의 강령답지 않게 형벌 만능주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강령에서는 ‘무관용’이라는 표현이 2번, ‘양형 강화’라는 표현이 1번 나온다. ‘(1-3)편법과 반칙의 입시 비리가 밝혀질 경우, 무관용 원칙을 적용’ ‘(8-3)아동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과 학대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 ‘(9-2)성범죄에 대한 양형을 강화 (…) 성범죄에 연루된 자는 공직 등의 진출을 원천 차단’


국가 형벌권을 강화하자는 주장에는 국가주의, 형벌 만능주의,대증적 포퓰리즘이 뒤섞여 있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경우 이미 폭행이나 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살인죄보다 더한 처벌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는 ‘민식이법(교통사고범 처벌법)’ 등 포퓰리즘 입법들도 비슷하다. 법으로 강제를 하고 엄벌을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단순 무식한 발상이 어린이 교통사고와 성폭력 범죄에서 재연되고 있다.


9.2 강령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시대적인 요구인 경제자유화보다 철 지난 요구인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과제처럼 받아 안고, 시급한 공공 개혁과 탈원전 정책 폐기 등에 대해서는 함구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다름없는 복지 개혁 및 복지 확충을 외면하고 먼 미래의 일인 기본소득을 강조하고, 불평등 양극화에 대해서도 엉뚱한 처방을 한 것이다.


강령에서 공공부문에 대한 언급은 ‘5-2 (유능한 정부 혁신) 막대한 혈세가 소요되는 공공부문의 규모를 늘리지 않으며 우수인력의 이탈을 막는다’고 되어 있다. 공공부문은 누가 봐도 대폭 줄여야 할 상황인데, 이를 과감히 줄인다는 표현이 없다. 공공부문은 우수한 인력 이탈이 문제가 아니라 민간〮기업 분야로 가야할 청년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상식이다. 강령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원자력 중흥 비전도 실종되었다.

‘7-2 (저탄소 청정에너지 혁명) 온실가스 발생이 낮은 핵분열, 핵융합, 바람, 수소, 태양, 물 등 저탄소 청정에너지 사회를실현한다. (...) 지속가능한 친환경 사회를 위해 스마트 그리드 구축 등 에너지 수요 관리 정책으로 바꾼다’고 되어 있는데, 이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문 정부가 70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 낸 원전 산업 생태계를 고사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는 하나마나 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기차, 사물인터넷과 5G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에너지 수요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한데, '에너지 수요 관리 정책으로 바꾸고’라는 말은 기존의 정책을 '에너지 공급 확대 정책'으로 규정했기 때문인데, 역시 방향 착오가아닐 수 없다.


기본소득 관련 언급은 ‘1-1 (누구나 누리는 선택의 기회)’에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매우 준엄한 과제이긴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가 지천이다. 또 이것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관건이다. 기본소득은 ‘중부담 저복지’의 사실상 가렴주구苛斂誅求 국가를 ‘중부담 중 복지’의 정상적인 복지국가로 개혁하는 작업, 다시 말해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한국 복지제도를 내실 있게 만드는 일을 오히려 방해한다. 기본소득은 필요하면수십 년 뒤에 전격적으로 실행하면 된다. 선 지급, 후 정산 하면
되기에 실행 자체도 너무 쉽다. 게다가 한국이 앞서 나갈 필요가없다. 기본소득에 대한 언급은 사기(사실은 기본 용돈)이자 포퓰리즘이자 복지국가의 기본 정신에 대한 부정이다. 복지 정책은 ‘8장 내 삶이 자유로운 나라’에 집중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문재인‘국정운영5개년계획’에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국가주의적표현을 의식하여 쓴 것처럼 보이는데, 내용은 ‘중복되고 실효성없는 복지 서비스 개편’ ‘불필요한 행정 비용을 최소화’라는 곁가
지 붙들고 용쓰는 직업 공무원적 문제의식이 진하게 배어 있다.

9.2 강령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보수 가치의 실종과 경제민주화 과잉이다. 강령에 '보수'라는 단어는 없다. 사실 보수라는 말이 없어도 '보수' 가치를 잘 구현하면 되는데, 문제는 ‘보수’ 가치가 거의 실종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전문)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전문) ‘(3-2)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제 질서를 수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혹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제 질서만 충분한데, 왜 뜻도 모호하거나 시대착오적인 경제민주화를 병기했는지는 김종인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김종인은 한국이 경제민주화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2012년 총선에서 국민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은 보수정당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니까 안정 속에 그런 변화가 가능할 수있겠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 뒤 이은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은 거꾸로 야당에 희망을 걸었다. (…) 이번에는 야당에 경제민주화를 기대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다.’(『영원한 권력은 없다』 371쪽)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정강 정책에서 ‘보수’를 빼고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용이 오히려 (새누리당득표에) 도움이 되었다.’ (앞의 책, 372쪽)‘(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해놓고 부정하는 등)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은 임기를 채울 필요조차 없다는 준엄한 심판의 목소리’ ‘박근혜 탄핵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고리에 대한 탄핵’(앞의 책 355쪽)‘박근혜가 탄핵 받아 마땅한 행위’를 했다.(앞의 책 388쪽)


한국 헌법에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라는 제119조2항 외에도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근거가 차고도 넘친다. 국가의 경제 주체 혹은 경제 행위에 대한 보장, 보호, 육성, 보장, 계도, 금지, 조정, 규제를 명기한 제120조~제125조의 6개 조항도 경제 활동의 자유 내지 사유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옥죌 수 있게 한다. 특히 제123조 (농어업, 지역경제, 중소기업, 농어민 이익,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 조직 등에 대한 보호, 육성, 보장)와 124조(건전한 소비행위 계도)가 그 압권이다. 국가가 보호 육성해야 할 중소기업은 기업의 99%이고, 소비자는 국민 전체이기때문이다. 게다가 농어업, 농어민, 지역경제, 국토와 자원 보호 등도 거대 경제 세력에 대한 규제와 조정의 근거이다.


국가주의에 찌든 한국 현실을 직시한다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경제민주화=경제의 정치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경제의 탈정치화이다. 시장 자치 등 사적 자치를 확대하는 일이다. 김종인은 노동개혁, 규제개혁, 공공개혁, 연금개혁, 금융개혁, 교육개혁 등이 얼마나 절실한지,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의 이름 하에 최저임금 폭증, 주52시간 근무제, 정규직=정상, 비정규직=비정상시, 공공부문 폭증, 경직되고 촘촘한 국가규제, 탈원전, 형사처벌만능주의, 과도한 상속세, 법인세 문제 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별 문제의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김종인의 문제의식은 삼성그룹 등이 정권을 우습게 보면서 전방위적으로 대담하게 로비를 하던 199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거대한 착각이요 자뻑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정이 비교적 쉽지만, 스스로 꽉 차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독선에 찌든 사람은 비판조차 꺼리게 된다.
그 외에도 경제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서술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강령에서 양극화라는 말은 6번 나오는데, 핵심은 다음과 같다.


‘3-1(사회 양극화 해소)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제2의 디지털 격차 해소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한다. 사회보험료 감면을 확대하고 (...) 모든 경제 주체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합당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한다.’


강령은 양극화의 원인으로 ‘경제의 질적 변화’(전문)와 ‘제2의디지털 격차’를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현재(최근 몇 년)와 미래의 양극화 요인 중에 하나는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양극화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보다 훨씬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한국 특유의 공공-민간, 무한 경쟁산업-규제 산업, 조직-미조직, 정규-비정규, 대기업-중소기업, 현세대-미래 세대의 크고도 불합리한 격차를 분석하고 여기에 대
한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 거의 없다.최신 기술 트렌드나 미래학 책을 좀 본 사람이 강령 작성에 참여했는지, 알아먹기 힘들거나 그 내용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많
이 들어가 있다. 일종의 지적 허영이다.


‘2-2 (과학기술 기반 융합 산업 발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긱 경제(Gig Economy), 플랫폼 경제, 공유경제, 온-디맨드 경제 등에 대비 (...)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 등에 기반한기술... 4-1 (미래의 노동)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긱워커, 온라인・원격 근무’


이런 최신 트렌드를 담고 있는 용어를 길게 나열하여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한 것처럼 보이는데 참으로 얕은 수작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강령은 중도화(좌클릭), 좌경화 이전에 총체적으로 퇴행해 버렸다고 보아야 한다. 실패와 좌절, 성공과 영광의 역사에 대한 성찰도 없고 복잡다단한 한국 현실에 대한 통찰도 없다. 당면한 국가적 현안(문제〮위기)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진단도 없고,난마처럼 얽힌 문제〮위기에 대한 종합적, 모순이 적은 대안도 없다. 너무나 조야하고 수구 반동적이기조차 하다. 오만가지 증상,불만, 요구, 최신 기술 트렌드를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이 강령은 김종인이 몇 개 주문을 집어 넣고, 종합적 경세방략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그래서 김종인이 지적으로 얼마나 얕고 낡은 사람인지를 모르는 젊은 정치인들과 일부 시험엘리트(직업 공무원)들이 뚝딱뚝딱 만든 것이다.


4.15총선 참패의 결정적인 요인인 황교안-김형오-공병호의 선사후공 정신과 그 이후 비대위를 주도한 김종인-주호영의 그것이 다르지 않다. 공천 추태나 당에 대한 비호감은 대부분 여기서 발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은 사회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잘 거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저작권자 ⓒ사회디자인연구소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