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화물연대에 무원칙하게 굴복 땐 노동·산업 현장 무정부 상태(민노총 제11탄)

최저임금제와 안전운임제, 몸통 하나 머리 둘인 괴물

김대호 승인 2022.12.29 15:09 의견 0

지난 11월 12일 민주노총 주최 전국노동자대회 부제는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이었다. 양경수 위원장의 대회사에 이어, 노사분규가 한창인 노조·지부·지회 대표들이 무대에 올라 “현장 발언”을 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보건의료노조 원주 연세의료원 지부 등 6개 노사분규 사업장 대표들이 발언했으나, 11월 24일부터 파업=집단운송거부에 돌입하여, 물류대란을 일으킨 화물연대는 등장하지 않았다. 화물연대의 상급단체인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현정희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안전운임제-건강보험 재정 정부지원-공무직위원회 등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제도를 지키고 넓히는 싸움” 시작한다고 공언했지만, 화물연대의 파업(?)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2일 오전 느닷없이 민노총 위원장과 주요 노조위원장들이 국회 앞에 모여 총파업·총력투쟁을 선포했다. 바로 화물연대 파업(?) 때문이다. 이날 배포된 민노총 명의의 총파업·총력투쟁선포 기자회견문에서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교통·의료·돌봄 민영화 중단’ ‘노조법 2·3조 개정’ ‘진짜사장 책임법, 손배폭탄금지법 제정’과 ‘화물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적용업종 확대’를 핵심 요구로 적시했다. 이로 미루어 민노총은 파괴력이 극강인 화물연대 투쟁에 숟가락을 얹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무튼, 민주당과 정의당은 호재를 만났다. 정부가 공권력으로 강경 진압이라도 하면 노동탄압으로, 유화적으로 대처하여 물류대란이 장기화하면 무능으로, 지난 6월처럼 정부가 화물연대에 굴복하면 경제단체와 지지층으로부터 자유·시장·공정·법치를 배반했다고 공격당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윤정부는 화물연대-민노총-MBC-민주당-정의당의 철석동맹과 싸워야 하니 죽을 맛일 것이다.


2002년 6월 출범한 화물연대는 조합원 수 약 2만 2천 명인데, 대부분 1~2억 원짜리 대형트럭을 가진 화물차주(자영업자)들로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근로자를 약자로 보고, 쟁의행위를 폭넓게 규정한 노조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근로자와 노조임을 강변해왔다. 이를 토대로 지난 20년 동안 집단행동(담합 등)을 통해 권리·이익을 끊임없이 쟁취해 왔다. 2003년 5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이러다 대통령을 못 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라는 그 유명한 푸념이 터져 나오게 한 장본인 중의 하나다. 화물연대는 2003년 5월과 8월, 2006년 12월, 2009년 6월, 2012년 6월, 2019년 4월에 총파업(?)을 했는데, 어김없이 불참자 위협, 불참 차량파손, 차량 진출입로 점거 등 불법 행위를 자행하였다. 상급단체에 의해서도 통제 안 되고, 건드려서도 안 되는 존재(untouchable)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출범시 국정과제(32번)로 2018년 화물자동차법 개정과 2021년부터 표준운임제 본격 시행을 약속했다. 그런데 시장원리나 경제정의에 정면 반하는 법이라, 심의 과정에서 컨테이너·시멘트 2개 품목에 한해, 2020년~2022년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20년 이후 컨테이너 운임은 서울~부산 기준 28%, 시멘트 운임은 의왕~단양 기준 38% 올랐다. 안전운임제는 특수이익집단의 국가•국민(화주, 소비자 등) 약탈 행위를 법으로 추인해 준 격이다. 이 짭짤한 이권을 쟁취한 집단이 일몰제 폐지(영구화)와 적용 품목 확대(철강재, 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 지·간선 등)에 나서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올 6월 중순 8일간 파업(?)에 돌입했는데,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의외로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대상 품목 확대 등도 논의’ 한다는 등 화물연대의 요구를 거의 다 수용하였고, 정부·여당은 지난 22일 일몰제는 3년 연장하되, 품목 확대는 불가하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6월 합의 사항이 아닌 일몰제 폐지=영구화와 적용 품목 확대를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화물연대의 파괴력은 6월보다 지금이 세다. 시멘트 등이 다량 소요되는 건설 공사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전(11월~12월 초순)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민주당·정의당이 다수 의석을 가진 21대 국회에서, 그것도 11월 말을 전후한 시기가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할 호기라고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예고된 재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윤정부가 이에 대비한 흔적이 없다. 아쉬운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만약 화물연대가 국가를 대상을 한 약탈전에서 성공하면, 문재인 정부의 방조, 비호, 지원으로 기득권 집단이 되었거나 기득권이 팽창된 수많은 특수이익집단은 화물연대를 모델로 하여 국가와 국민 약탈 투쟁에 떨쳐나설 것이다. 사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것이다. 힘없는 서민에게는 독재정부 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약탈이 일어나는 무정부(無政府) 상태가 최악이다. 정부가 화물연대에 무원칙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칫 산업·노동 현장은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 동시다발 파업이 경제와 민생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제와 안전운임제, 몸통 하나 머리 둘인 괴물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제와 그 발상과 문제점이 유사하다. 둘 다 몹시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업주나 근로자의 가격(운임·임금)덤핑을 금하는 법적 장치다. 그런데 북유럽 4국처럼 자조,연대,지속가능성에 투철한 산별노조가 있으면 산업·업종·지역별 단체교섭으로 운임·임금·휴게시간 등을 결정한다. 그 곳에서는 교섭력 약한 근로자의 존엄을 지키는 노사가 합의한 최저임금은 있어도 법으로 강제하는 최저임금제도는 없다. 1~2억 원짜리 생산수단(대형트럭)을 가진 자영업자(트럭 차주)들의 운임 덤핑을 막기 위해, 법으로 강제하는 안전·적정·표준·최저 등으로 수식되는 운임제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요컨대 노사자율 단체교섭으로 안전·적정 운임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있지만 국가가 형벌로서 무슨 운임제를 강요하고, 운송계약 당사자도 아닌, 업체에 운송을 의뢰한 화주 처벌 조항까지 있는 나라는 없다. 이 하나만 봐도 안전운임제가 얼마나 기형적인 제도인지 알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희대의 좌파 포퓰리즘 정부 문재인 정부가 싸질러 놓고 튄 수많은 적폐 중의 하나이다. 탈원전-한전 적자-태양광 비리-한전공대 정책과 공공부문 팽창(81만 개), 국가예산·부채 폭증, 가계부채 폭증, 부동산 가격 폭등처럼 시장·공정·산업·미래 파괴적 정책 중의 하나이다. 안전운임제는 자유와 공정에 너무나 반하기에, 안전개선 효과가 있으면 확대하고, 없으면 폐지할 정책이 아니다. 그런 제도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교통(운송)안전과 종사자의 근로조건 개선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전운임제는 특수이익집단에 의한, 국가와 국민(화주·소비자) 약탈 행위다. 민노총 조합원들이 근로소득 상위 10% 이내의 현대판 양반귀족이 대부분이듯이 화물연대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다. 화물연대는 시대착오적 이념 집단이 아니라 부유한 특수이익집단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조·연대 조직을 결성할 수 있고, 단체행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소극적 업무 거부를 넘어 불법적 운행 방해나 도로 점거는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경찰, 고용부(근로감독관), 지자체(주차단속요원) 등이 화물연대의 불법 행위를 철저히 적발·채증하여 신속하게 행정조치 하는 것이다. 화물연대를 괴물로 만든, 불법과 폭력에 대한 정부의 오랜 방조나 미온적 대처만이라도 바로 잡으면, 더 나아가 안전운임제라는 희한한 제도를 만들어낸 한국 특유의 모순부조리 구조(정치·입법 폭력)에 눈을 감지 않고, 궁박한 처지의 사업주나 근로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물류대란을 진정시키고, 노동현장을 공정과 상식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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