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쁜 놈들이 있는데”는 전두환의 논리

-서초동 시위 참가가 ‘짜장면’때문이라고? 작은 허물로 인격살인한다고? 팩트확인 안하나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19.11.05 11:21 | 최종 수정 2019.11.11 12:14 의견 0

-서초동 시위 참가가 ‘짜장면’때문이라고? 작은 허물로 인격살인한다고? 팩트확인 안하나

-“더 나쁜 놈, 더 사악한 놈들 있고, 전두환 정권이 이들과 맞서 싸우는데 너네 왜 이러냐?”

–‘조국수호’자 논리와 ‘빨갱이 타령’ 논리 구조 빼닮은 건 서로 가치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

 

 

[이슈논쟁] ‘나도 조국이 될 수 있다’는 위협 속에서 / 김도훈

 

당시 30대였던 이 친구가 2015년 12월 20일 경에 우리 연구소를 찾아왔다. 어찌나 반갑고 놀랍고 기쁘던지! 젊고영국 유학도 갔다 왔고, 그런대로 견실한 작은 벤처 사업체도 운영하고, 게다가 정치 의식도 높고, 페북 글을 보고 나를 찾아 올 정도의 행동력까지!

 

당시 X86세대에 절망하던 내 눈에는 내가 찾아 헤매던,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인재로 보였다. 이런 인재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관계를 돈독히 하느라 그 뒤로 두 번 쯤 더 만났던 것 같다. 그리고는 끊어졌다. 페북 글과 칼럼을 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기 때문이다.

 

대충 2년 여 전부터는 관심을 거의 끊었는데, 오늘 우연히 그의 칼럼이 내 눈에 들어왔다. 서초동 시위 참가의 변이다. 사실 나는 ‘조국수호’자들의 논리가 하도 궁금하여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하나같이 허접해서 놀랐던 터였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던 참에, 내가 아는 젊고 유능한 친구가 이 글을 썼길래 반갑고 궁금하여 읽어봤다.

 

지금도 가치 판단의 기준이 절대악 보수인 자한당에 이로우냐, 해로우냐인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국 민주,진보,좌파나 자유,보수,우파나 이런 사고방식에 감염된 사람들이 정말 많아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이 친구, 이것밖에 안되는 친구였나!’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3년 만에 다시 광장(서초동)으로 나서게 된 이유를 한 단어로 짧게 표현한다면 ‘짜장면’ 때문인 것 같단다.

 

“고작 표창장의 위조 여부를 밝히기 위해 다수의 검사가 일가족의 작은 집을 11시간 동안이나 압수수색하고, 집안에 눌어붙어 짜장면이나 시켜 먹던 행태에서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가가 위임한 법 집행 이외의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 영화에서나 봤던 조폭을 꼭 빼닮았다.”

 

11시간 압수수색과 짜장면의 사연은 이미 보도가 되었다. 한겨레 신문의 보도는 이랬다.

 

“어제 압수 수색 집행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다려 달라는 가족의 요청이 있어 변호인들이 참여할 때까지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아니하였다……이후 압수 대상 목적물 범위에 대한 변호인 쪽의 이의 제기가 있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 2차례에 걸쳐 법원으로부터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추가 집행을 실시하였다”

 

검찰이 압수 수색 시간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짜장면을 주문해 먹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이에 대해 검찰은

 

“오후 3시께 (조 장관)가족이 압수 수색팀이 식사를 하지 않으면 가족들도 식사를 할 수 없다고 권유해, 함께 한식 식사를 했다”

 

고 말했고, 압수 수색팀의 식사 비용은 검찰이 냈다고 했다. 특이한 일도 분개할 일도 아니었다. 자신의 분노와 행동의 주요 근거가 되는 사건이라면, 간단한 검색이라도 해서 자초지종을 따져보는 것이 지식인의 기본 아니던가.

 

이 친구는 조국 일가의 부정비리 혐의에 대해서 몇 줄 언급을 했는데, 한마디로 제대로 알아 본 것 같지 않다. 평범한 학부모들이 하는 편법, 꼼수, 재테크, 작전 정도로 본다. 다만 실망과 우려의 마음은 든단다.

 

하기사 11시간과 짜장면 사건에 대해서 실사구시한 수준을 보면 다른 사건에 대한 실사구시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나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한국일보, 내일신문,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등의 신문 칼럼을 꽤 많이 써 본 편인데, 칼럼 하나를 쓸 때 단어 하나, 사건 하나, 문장 하나에 대해서 꽤 많이 신경쓴다.

 

특히 팩트 확인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기본적인 팩트 확인도 안하고 쓴 것 같다. 30분 만에 후다닥 쓰는 페북 글도 이렇게 안 쓰는데 말이다.  또 하나 눈에 크게 거슬리는 것은 한국 민주, 진보, 개혁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감염된 거악 타령이다.

 

“그들보다 훨씬 더 부패했으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작은 허물을 침소봉대하여 인격살인을 하려는 세력들을 본다. 무능한 권력의 공백이 더 사악한 권력으로 채워지면서 국가와 사회가 병들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한마디로 “더 나쁜 놈, 더 부패한 놈, 더 사악한 놈들이 있는데 왜 이러냐!”는 거다. 내가 1980년대 운동하다 잡혀서 경찰서나 구치소에 있을 때, 김일성과 북한 타령 하는 경찰을 정말 많이 봤다. 더 나쁜 놈, 더 사악한 놈들이 있고, 전두환 정권은 이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데, 왜 이러냐(왜 김일성이 좋은 짓을 하냐?) 이거였다.

 

지금도 가치 판단의 기준이 절대악 보수인 자한당에 이로우냐, 해로우냐인 사람이 의외로 많다. 1980년대 나랑 스크럼을 짰던 많은 친구들과 ‘조국수호’패 상당수의 가치 판단 기준도 동일하다. 절대악 자한당에 이로우냐 해로우냐다. 한국 민주,진보,좌파나 자유,보수,우파나 이런 사고방식에 감염된 사람들이 정말 많아 보인다.

 

1980년대 내가 만났던 경찰의 논리 구조와 ‘조국수호’자들 상당수와 ‘빨갱이 타령’ 하는 사람 상당수의 논리 구조가 같다. 이는 자신과 대한민국이 어디 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는 GPS나 지도, 북극성,나침반,각도기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진보 내지 문재인 정부라는 배를 타고 있으면 민주, 진보, 개혁, 방향 내지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줄 안다. 위치와 방향 감각을 잊어버리니 문재인 정부와 민주,진보,개혁과 자신을 일체로 여기게 된다는 얘기다.

 

안타깝다. 사람은 역시 한 두 번 봐서는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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