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년 경제평가 및 제언 ( 2/3 )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18.07.17 11:53 의견 0
5. 문재인정부의 착각   1)선-악, 도덕-부도덕, 강자-약자 프레임   문재인 정부와 상당수 진보 세력이 노동과 자본, 가계와 기업, 원청(재벌대기업)과 하청(중소협력업체), 갑과 을, 건물주와 임차인 등을 강자와 약자로 규정한 후 국가(정부)를 균형자 내지 약자의 대변자=강자에 대한 규제자로 설정한다. 동시에 민간/기업/개인의 이기심/탐욕(투기)과 국가/정부(정치,관료, 공기업임직원)의 공공성도 대립시킨다. 따라서 민간(사기업)이나 권력이 강자로 규정한 존재의 자유권/재산권 침해를 예사로 하게 된다.   그 중에서 자본-노동 프레임은 다른 많은 프레임을 지배하다시피 한다. 이 프레임은 그 처지와 조건이 천차만별인 노동과 자본을 각각 단일체로 인식한다. 자본/기업의 대표 주자는 삼성 등 재벌대기업으로, 노동의 대표는 노조로 간주한다.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완화, 친시장 반노조 등)가 맹위를 떨치면서() 자본과 기업의 힘이 커졌고, 그에따라 비정규직과 고용불안이 증가하고, 노동소득분배율과 가계소득 비중이 감소했다고 진단한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자본의 과잉 착취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로 지목한다. 따라서 국가(정부)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핵심 수단인 세금(법인세 등)과 예산, 국가규제 및 징벌권, 공공부문 확충 정책 등을 활용하여 신자유주의(세계화) 공세를 차단, 완충해야 한다고 본다.   자본-노동 프레임은 노동권 강화를 기치로 노동(현재의 근로자)에 대해 온갖 보호 규제를 투하 한다. 그러다보니 노동의 갑 중 갑이자, 하는 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처우를 누리는 노동(공공부문과 대기업과 규제산업 근로자 등)에게 엄청난 지대와 보호를 제공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노동 프레임은 노동-노동, 노동-비노동(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갑(노사)-을(노사), 공공-민간, 현세대-미래세대 간의 심각한 균열선 내지 자유와 권리 격차는 간과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고용정책의 주요 사고 프레임>   정책적 결론은 공공부문(고용, 개입 영역 등) 확대를 통하여 사회공공성을 제고하고, 최저임금 대폭 상승을 통하여 가계소득을 증대시켜 사회양극화를 완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률과 삶을 질을 제고하고, 비정규직 규제및 엄격한 집행(파리바케트 5378명 직고용 명령, 한국GM 774명 직고용 명령 등)과 노조와 연대(협치)를 통해 자본의 탐욕을 제어하고, 노동을 보호하며, 부동산 규제를 통해 투기도 제어하고, 의료 규제(비급여 영역 대폭 축소=문재인케어)와 탈상품화를 통해 의료비 절감()과 의료 공공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해 70만명 이상 태어나, 본격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1991~95년생의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으로 기업에 한 명당 연1천만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한비자, 아담스미스, 존스튜어트밀의 통찰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리고, 조선 성리학과 사회주의적 사고가 부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을 국가의 보호 대상으로 보게 되면, 산업기업의 인력사업 구조조정이 심각한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2009년 쌍용차 사태, 2011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2015년 이후 대우조선 사태, 2017년 한국GM 사태 등에 대한 문정부 지지층의 인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박영사 , 2017)에서 리콴유가 1990년대 초중반 베트남에 대해 평가한 내용이 나온다.   "그들(베트남 정부)은 한 사람의 투자자가 만족하면 더 많은 투자자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투자가 한 명을 낚으면 최대한 이득을 짜내겠다는 생각에 머물고 있었다......1세대 원로들은...경제를 잘 안다거나 탁월한 행정능력을 보여준 결과로 고위직에 오른 것이 아니다. 이들은 30년 이상 북쪽에서 남쪽까지 땅굴을 파는 데서 능력을 보여준 사람들이다......덩샤오핑과 같이 간부집단에서 부동의 지위를 확보하고 개혁 이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 없다......중국 공산주의자들은 평화시기에 수십 년의 행정경험을 통해 실제 효과가 있는 것들을 실용적으로 판단해서 계속 유지발전시켜야 할 이념과 믿음을 정교화시켜 나간 사람들이다. 반면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은 미국과의 참혹한 게릴라전에 묶여 국가 운영에 필요한 학습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183~184쪽)   사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의 상당수도 1990년대 베트남처럼 기업(투자자) 하나가 들어오면 최대한 이득을 짜내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 베트남은 개혁을 통해 이런 인식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문제는 지금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와 행정 관료, 적지않은 판사들, 시민단체, 진보언론사, 진보 논객과 진보 성향 여론 주도층도 리콴유가 본 베트남 공산주의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학습을 전혀 하지 못하여", 정부(규제, 공무원 등), 시장, 경제, 기업, 기술, 노동, 노조 등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 심하다는 얘기다.   프랜차이저 빵집 중에서 1위 업체인 파리바게뜨에 5378명 직고용 명령과 (미이행시)천문학적 과태료를 때려 몇 천명의 임금을 대폭 올리고, 고용을 안정시키려는 발상의 뿌리는 파리바게뜨는 부자고, 곳간에 곡식이 많아 보이니, (사회를 위해) 좀 내놓고, 부자집 식솔 수도 늘려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투자자가 달아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기존 투자자가 투자와 고용을 늘리려는 생각도 아예 접어 버린다는 사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부자와 빈자, 기업주와 노동자가 송사를 붙으면 법리적으로 분명히 부자나 기업주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부자고 기업주니 손해 좀 보라는 식의 판결이 부지기수다. 쌍용차 2심 판결과 통상임금 판결이 대표적이다. 그 판결을 보고 규제 리스크나 사법 리스크나 노조리스크 등을 보고, 공포에 질려 국내 투자와 고용 의사를 접어 버리는 수많은 자본/기업들 생각을 안한다. 판결의 길고 긴 파장을 생각하지 않고, 눈 앞에 보이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이 무수한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권 침해를 초래한다.   법리와 사실을 따져 강자 편을 들어주면 돈 먹었다고 생각한다. 매출 이익의 90%를 해외에서 얻는 삼성을 무슨 노동 착취와 협력업체 착취와 대관로비로 이익의 대부분을 얻는 악덕 기업으로 생각한다. 바로 경제운용 훈련과 국가경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베트남 공산주의자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자본의 한국 탈출 조짐은 뚜렷하다. 2018년 6월 28일 발표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34분기부터 2018년 14분기까지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투자 신고금액은 114억 3,996만달러였다. 이는 지난 2016년 34분기에서 2017년 14분기까지의 신고금액과 비교하면 68%나 급증한 것이다. 신고에 그치지 않고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규모도 폭증했다. 제조기업의 해외투자 실적금액은 73억773만달러로 전년(2016년 34분기~2017년 14분기) 대비 28%가 늘었다.   <재벌 원흉론이라는 사기> 재벌을 무슨 대마왕이나 골리앗으로 , 자신은 무슨 정의롭고 용기있는 다윗인 것처럼 행동하는 국회의원, 정무직 관료(공정위장 등) 등을 종종 보게 된다. 한마디로 무지하거나 사기치는 자다. 백보양보해도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가리는 자다.   삼성 등 재벌이 광고홍보비로 언론을 길들이고, 국내 투자와 신입사원 공채 규모/시기 등으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삼성은 정부(검찰, 법원, 국세청, 공정위 등), 언론계, 학계, 정치권, 시민운동권 등 곳곳에 장학생들을 두려 하거나 두고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그래봤자, 수십 년간에 걸쳐, 재벌과 자본이 간절히 원하는 진짜 큰 것은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나 보편 지성에 완전히 반하는 한국 상속세법이 대표적이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안정화시키는 황금주, 포이즌필 등도 얻어내지 못한다. (물론 집단소송제 등 몇개는 막고 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기준 등.....)   글로벌스탠더드나 보편 이성에 맞게 고용유연성을 제고하는 노동관계법도 언감생심이다. 한국 공기업과 대기업에서는 노조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지만, 도대체 정당방위를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시대의 망국병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계급/공공양반 사회를 만듦에도 불구하고.......재벌 뿐만 아니라 자본 거의 전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진짜 거대한 신수종 사업이 될 수있어서, 삼성이 정말 간절히 원하는 금융규제와 보건의료 규제도 바꾸지 못한다. 4차산업혁명이 제공하는 기회를 움겨쥐는 것을 막는 무수히 많은 규제 역시 바꾸지 못한다.   산업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해 교육 법령과 정책을 바꾸고 싶어도 전혀 못한다. 사실 교육 역시 ICT 기술을 도입하고, 교육 공급자 카르텔을 깨면 엄청난 신수종 산업이 될 수있다. 삼성 등 재벌이 탁월한 로비 수완을 보이는 것은 소수가 밀실에서 만지작 거리는 규제, 행정명령/처분, 검찰/경찰 수사, 국세청/공정위/금융위 조사와 사법부 판결 등이다.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큰 것 아니다. 사실 찌질한 것들이다.   그런데 국가권력이 맘 먹고 재벌/기업에 불이익을 주려고 하면 재벌/기업으로서는 도대체 피할 수 없는 대재앙이다.   한국의 법령은 (엄격한 계약문서가 아니라) 도덕이나 이상을 표방해 놓은 경우가 많다. 처벌 조항 자체가 정말 많다.(주 52시간을 어겨도, 최저임금을 위반해도, 노조 약화 책략을 담은 문서를 만들어도 구속 당할 수 있다). 배임죄, 세법, 공정거래법 등 애매모호한, 즉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가 되는 조항도 많다. 권력자의 말을 안듣고 자신의 소신과 양심으로 일하는 공무원을 죽일 수있는 수단도 많다. 표적 감사 하면 웬만한 공무원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자가 정부 각 부처에 재벌/기업에 대한 총공격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집행이 된다. 몇 년뒤에 그 명령권자는 권한 남용으로 처벌을 받을 확율이 높겠지만.......   또 있다. 홍수처럼 정부 기금 계좌로 밀려들어오는 국민의 노후자금(국민연금)으로 대기업 지분을 대거 살 수도 있다. 외환위기 전후에서는 30대 재벌 중 16개가 파산하거나 주인이 바뀌었고, 해방 전에 만들어진 시중은행도 다 인수합병 되었다. 이건 결코 시장원리가 아니었다. 초고금리, 부채비율 200%, bis 8%도 얼마든지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도 국가권력이 엄격한 규제 들이대면 박살날 재벌이 한 둘이 아니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1961년 퇴임사를 인용하거나, 노무현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인용하여 재벌이나 거대 경제권력이 정치권력 위에 있다고 사기치는 사람들이 좀 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전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데, 재벌/대기업은 인정사정 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해서 외화를 벌어온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규율 메카니즘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가권력은 완변한 독점이다. 게다가 한국은 세금, 예산, 규제, 공기업 등에서 폭넓은 자율권(자치권)을 가진 주 정부가 없기에, 국가권력의 독점 수준은 월등히 높다. 이는 중국 보다 한국이 훨씬 심하다.   그리고 법령과 인사(승진, 보직, 감사) 시스템도 재벌/기업을 죽이려면 죽일 수단이 정말 너무 너무 많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한국에서, 재벌권력이 정치권력 위에 있다는 말은 완벽한 무지거나 착각이거나 사기다. 유럽, 미국과 한국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 진짜 용기있는 자는 박정희가 만든 창의적 변칙편법(지대할당)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우리의 소중한 재벌/대기업의 빛과 그늘을 균형적으로 보고, 빛을 보존하고, 그늘을 합리적으로 줄이려고 하는 사람이다.   변칙편법으로 성공한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부인하고, 갑자기 선진 자본주의 잣대를 들이대어, 이게 무슨 파렴치한 반칙왕처럼 폄하하며 몽둥이질을 하는 자는 경제 자해범이요 고용학살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상조, 장하성, 전성인, 박상인 등의 재벌 개혁론에 경청할만한 지적이 왜 없겠는가하지만 법규제, 정책, 세금, 예산, 사법, 공기업 등을 좌지우지하면서, 천만배의 패악을 저지르는 국가권력 문제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정치와 정부가 틀어쥔 법규제와 세금 예산 사법만 선진적이면 재벌은 있어도 재벌 문제는 한참 줄어들 것이다.   2)원인과 결과의 혼동   이는 문제(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3불 등)에 대한 피상적,일면적 진단의 후과로서, 소득주도성장론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국정목표2 : 더불어 잘사는 경제”>> “전략1 :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은 이렇게 말한다.  
  ㅇ"더불어 성장의 핵심과제는 ‘좋은 일자리가 마련된 대한민국’으로, 일자리 창출로 가계소득을 늘리고,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를 확대하여 내수 활성화 및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 구조’ 구축. ㅇ일자리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을 줄이며, 고용의 질을 높이는 ‘늘리고, 줄이고, 높이는’ 전략. 이를 위해 정부가 81만개의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앞장서고, 기업과 노동자는 사회적 대타협과 강력한 산업혁신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  
  즉 결과(좋은일자리 창출)를 원인(내수 활성화및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선순환 구조' 구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마차(고용)를 움직여 말(경제)을 움직인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   3)정상과 비정상의 혼동   문재인정부는 정규직=정상, 비정규직=비정상이라는 도식에 입각하여 전자를 늘리고 후자를 줄이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공익추구적, 민간부문=사익추구적이라는 도식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과 대기업의 고용임금을 정상, 나머지를 비정상으로 간주한다. 이윤과 임금이 생산성과 지대의 중첩이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한국 특유의 격차 구조의 원인과 해법도 알 수없다. 한국의 생산력(1인당 GDP나 GNI) 수준을 감안하여 최저임금, 공무원임금, 대기업 및 중소기업 임금 수준이 정해져야 한다는 개념도 없고, 변화부침이 심한 시장환경을 감안하여 고용보호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개념도 없다. 노동권을 강조한 나머지 재산권(자유권)을 너무 심하게 훼손하면서 자본의 국내 투자와 고용 의지를 말려버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기득권인 대기업 노조와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이해, 요구(기대수준), 정서(그 돈 갖고 어떻게 사냐)에 영합하고 있다. 이것이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초래하고, 시장과 기업에 대한 국가규제를 남발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닌 근로자로 정의된다. 따라서 ‘지금 여기’ 정규직을 알아야, ‘지금 여기’ 비정규직’을 알 수있다. 한국식 정규직은 법정근로시간(주40시간) 보장+정년보장+강고한 고용보장(정리해고, 징계해고 외에는 해고 불가)+연공임금(직무별 근로조건 표준 부재, 생산성과 괴리된 임금)+ 두터운 기업복지를 누리는 존재다. 요컨대 한국식 비정규직은 한국식 정규직의 그림자다. 본체를 없애면 그림자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개인의 고용임금 수준이 자신의 본원적인 생산성(직무성과)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집단의 지불능력과 노동의 교섭력에 의해 정해지는 부조리한 현실의 자식이다. 한마디로 소속 집단이 제공하는 지대(rent)가 지나치게 많은, 단지 소속으로 거저 먹는 무임승차사회, 직장계급사회의 산물이다. 당연히 이런 사회에서 최고의 직장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국가(공공)부문이다. 이 종사자들은 시장의 변화 부침에 초연할 수 있고, 필요하면 세금이나 요금을 통해 지불능력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협력업체나 소비자에 대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현대기아차 같은 민간독과점 대기업과 은행 같은 규제산업이다. 한국식 정규직도 비정상, 비정규직도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킹핀이다. 각자의 고용, 임금, 복지 수준이 근속연수, 기업규모, 기업능력, 노조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본원적인 생산성(숙련 등)과 시장의 요구에 조응하도록 만들면 비정규직 문제가 있을 수 없다. 핵심은 생산물 시장과 노동시장과 공공부문에서 지대를 축소 제거하는 것이다.   -공무원및 공공부문의 고용임금 2015년 12월 31일 기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본 대한민국 공무원” 102만 6천명의 평균은 연령 42.2세, 재직기간 15.7년, 월평균 초과근무시간 25.1시간, 세전 연봉은 5,892만원이다. 여기에는 1인당 평균 100만원 가량되는 복지포인트와 공무원 연금 부담금 등 실제 고용주(정부) 부담이 빠져있다. 뿐만 아니라 공간, 책상, PC, 생수, 냉난방, 통신 등 수많은 간접 경비도 빠져있다. 2017년 4월 관보에 게시된 공무원 기준소득 월액에서 연봉을 계산해 보면 세전 연봉은 6,120만원으로 올랐다.             일본은 2016년(平成28年) 4월 1일 현재 공무원급여법 적용대상인원은 253,624명、평균연령 43.3세(평균경력 21.7년)에 평균 급여는 417,394엔이다. 따라서 일본 국가공무원평균 연봉은 5,124만원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시한 근로자 평균 임금은 월 304천엔(42.2세, 11.9년)이다. 남성 335.2천엔(43.0세, 13.3년), 여성 244.6천엔(40.7세, 9.3년)이다. 일본 국가공무원의 급여 수준은 근로자 평균임금의 137%에 불과하다. 나이는 한 살 많고, 근속기간은 거의 10년이나 길어도!!   그런데 2016년 IMF 기준 일본의 1인당 GDP는 38,282달러, 한국은 29,115달러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공무원 연금이 한국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윤석명의 '일본 공무원연금 운영 현황과 시사점'(2015년) 37쪽(한국행정학회 기획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일본 민간 근로자 연금인 후생연금의 월 평균연금액은 월 16.1만엔이고, 국가공무원 공제연금 평균액은 월 21.4만엔이다. 그런데 공적연금 일원화 조치로 인해 2015년 10월부터 국가공무원 공제연금이 일반 국민대상의 후생연금 월 평균액인 16.1만엔(2012년 가치)으로 같아진다. 그런데 한국은 2014년 현재 평균 공무원연금액은 220만원을 상회하고, 2020년에는 20년 이상 재직한 공무원연금 월평균이 284만원(2014년 10월 국정감사 자료)에 달할 것으로 예상 된다. 보험료 부담수준은 일본보다 낮고, 일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의 67%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국민연금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공무원연금은 국민소득, 근로자 평균임금 혹은 중위임금에 비해 여간 높은 수준이 아니다.   공공부문 근로조건의 기준인 공무원 보수 기준은, 왜 한국에서 공공부문이 최고 선망의 직장인지, 왜 공무원 총정원제 같은 규제로 인력 팽창을 억눌러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리고 일본이 왜 20년 간 제로성장에도 불구하고 해체되지 않는지(헬 조선은 있어도 헬 일본은 없다), 왜 고시공시 열풍이 불지 않는지도 말해준다.   -노조에 대한 인식 문재인 대통령의 대기업 노조에 대한 인식은 2017.1.15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기자 질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족 노조, 정규직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문재인: “그 사람들이 양보하면 어떻게 되는데요그러면 비정규직 봉급이 올라가나그렇게 하고도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는데 사내 유보금은 어디다 쓰나 기자 질문: 대기업 노조 등 노동 개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문재인: 맞는 말이긴 한데 균형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율이 10%다. 그 가운데 방금 말한 대기업 노조가 얼마나 될 것이며 그 가운데 일자리 대물림 하는 대상이 얼마나 되겠나…….아직은 노동자들의 권익이 열악하다. 전체를 균형있게 봐야한다. 아직도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정리해고 당하고 정년이 60세로 돼있지만 평균 퇴직 연령이 52세다. 법적 정년도 제대로 못채우고 직장에서 밀려나는 현실인데 말하자면 극히 일부의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점을 내세워 오히려 ‘노조가 문제야’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2016년 1월에 도입된 2대 지침을 2017년 9월 폐기 하였다. 2대 지침은 저성과자에 대한 일정한 교육 후에도 성과가 나지 않을 때 해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해고 기준을 규정한 ‘공정인사지침’과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없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완화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말한다.   4)격차(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문제에 대한 무지와 착각   제조업, 건설업, 도매 및 소매업 등 17개 산업별로 월평균임금을 집계하면, 2016년 1~3월 기준 임금 1위는 전기가스증기수도사업(6,187천원)이고, 2위는 금융보험업(6,145천원)이다. 취업자 기준 생산성이 무려 세계 3위인 제조업(3,988천원)은 5위다. 1위 전기가스수도업은 공기업이 주도하는 산업이며, 2위는 시장참여 자격과 상품가격(수수료, 이자) 등에 대한 국가규제가 심한 규제산업이다. 그런데 한국 청년들이 선망하는 직장은 공기업과 은행, 방송, 통신 등 규제산업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과점(국내적으로는 수요독점)기업이다.   물론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배타적 독점권이 부여되는 면허 직업과 공무원이다. 2016년 2월 29일 JTBC 탐사플러스 취재팀이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생 8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이고,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2015년 이상적 배우자상(象)’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이상형은 연소득 5,417만원, 4년제 대졸, 공무원공사직 남성이다. 남성의 이상형은 연소득 4,631만원, 4년제 대졸, 공무원공사직 여성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공무원과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정규직원은 140만 명을 넘지 않고, 연소득 5,417만원은 1인당 명목 GDP(2014년 2,945만원)의 1.84배로, 20세 이상 인구의 상위 10%, 근로소득세를 내는 1,619만 명의 상위 20%다. 공무원은 임금의 원천이 세금이고, 공기업은 국가독점 업역과 규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임금은 그리 높지 않고, 고용 안정성도 민간에 비해 월등하지 않다. 공기업과 규제산업 자체가 적기도 하거니와 임금도 민간기업과 비규제(완전경쟁) 산업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한국에서 임금 등 근로조건은 집단(기업)의 생산성및 지대(초과이윤)와 개인(노동)의 생산성(숙련) 및 지대(초과임금)의 4중 중첩구조를 이루고 있다. 개인(노동) 지대(초과임금)의 핵심은 생산성과 상관없이 올라가는 연공임금과, 생산성과 상관없이 오로지 기업별 노조의 힘(기업별 단체교섭)에 의해 올라가는 생산성을 훨씬 초과하는 임금과 복리후생이다. 이를 떠받치는 것은 임금을 개인의 기여(생산성)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기업의 지불능력과 노동의 교섭력(단결투쟁력)의 함수로 보는 약탈적이고, 지대추구적인 임금관이다. 또 하나는 임금을 기여(생산성)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생애주기상 필요에 대한 배려로 보는 임금관이다. 더 근원적으로는 사람을 직무/기능/역할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집의 식구로 보는 문화다.   초과임금을 물질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초과이윤이다. 이는 공공부문과 국가규제(진입장벽)와 민간독과점 시장구조가 뒷받침한다. 이들은 국가 또는 과당경쟁()과 민간불량사업자로부터 소비자나 공공성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국가독점을 보장받거나 높은 진입 장벽(국가규제)에 의해 과잉 보호를 받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4중 중첩구조, 특히 기업과 노동이 깔고 앉은 지대를 녹여내야 할 공공부문과 노동관계법이 이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공무원의 보수 기준은 한국 사회의 최상층인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의 임금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부르짖지만 공무원과 공기업이 오히려 더 가파른 호봉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관계법도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의 노조의 압도적 힘의 우위를 뒷받침하고 있다.   5)사회적 유인보상체계 개념 부재   한국 사회는 부동산, 국가, 시장, 이념이 결합하여 부가 특정 지점에 집중되게 만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씨를 뿌리기만 하면 별 노력 없이도 높은 소출을 거두는 비옥한() 토지 같은 곳이 너무 많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소출, 즉 지대(rent)는 자연(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행운)과 땀과 지혜의 산물이 아니라, 국가의 무지, 보호, 방조의 산물이다. 지대는 기본적으로 거래 쌍방 중 일방(주로 을)의 현저히 약한 대항력(거부권 내지 선택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등의 더 공정하고 준엄한 감시, 감독, 처벌의 문제이기도 하고…… 지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한 사람이 만들어낸 소출(가치)을 약탈한 것이다.   지대(렌트)가 과잉이거나, 합리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시장에서는 경제주체들은 생산적 활동 보다는, 좋은 땅을 확보하거나, 좋은 위치=소속=지위를 확보하여 지대(렌트)추구에 매진하게 된다.   고교생들의 로망이 건물주,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이 되거나 , 국가독점 면허직업을 갖는 것이 되는 이유는 한국이 지대(렌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다. 이렇게되면 인간의 창의와 열정이 질식하고, 시장생태계가 황폐화 되기 마련이다. 경쟁과 갈등의 핵심은 지대(렌트) 추구가 가능한 좋은 위치 차지하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땀 흘려 자신의 토지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토지를 갖기위해 노력하거나, 좋은 토지를 가진 집안의 식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의 교육시험 경쟁이나 취업경쟁의 본질이다.   지대의 원천은 부동산, 국가, 시장, 브랜드(기술)과 가족주의, 연공주의, 쟁취주의 인데, 한국은 각각이 그 어떤 나라 보다 지대를 키우는 힘이 강하다. 부동산 가치, 많은 규제, 너무 높은 공공표준(공공부문에 대한 민주적 통제 실패), 불균형적인 시장, 노조와 공무원 등 힘센 이익집단이 체화한 내부자 이기주의(확장된 가족주의)와 무임승차 관행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소득분배 구조와 고용임금 격차가 나쁜 것은 단지 소수의 과점 때문만이 아니다. 개인의 실력과 생산성에 따라 지위와 처우가 결정되고 또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소속 직장의 지불능력에 따라 사람의 계급이 결정되고, 연공에 따라 지위와 역할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직장계급 사회, 연공계급 사회, 공공양반 사회에서는 청년의 직장, 직업 선택의 기준은 소명, 꿈, 직무적성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임금, 복지, 안정성이다. 시장, 경쟁, 개방을 차단하여 많은 지대를 제공받는 직장이나 직업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 용케 선망하는 직장 진입에 성공한 엘리트는 직무적성이 맞지 않아, 마음이 떠나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공무원, 교사, 판사, 의사 등 선망의 직업인 중에서 적지 않다. 한편 실패한 사람은 그 모멸감과 억울함 때문에 마음이 떠난다. 종종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염불 보다 잿밥이 먼저인 본말전도 사회, 가치 창조가 아니라 가치 쟁취가 중심인 지대추구 사회는, 살인적 경쟁을 하는 하층, 말단, 실무자는 선진국보다 유능할지 몰라도 상층, 중심, 결정자로 갈수록 점점 무능해진다. 사회는 활력이 생길 수 없다. 자리 차지하기 경쟁과 갈등만 극심하다. 물질적문화적생산력이 총체적으로 퇴보한다. 어느 사회든지 변화, 혁신, 도전의 선봉인 청년에게 최악의 시스템은 청년 세대만 찌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활력과 공동체 전체를 찌그러뜨리기 마련이다.   -재산권=(경제적)자유권과 권리 간의 균형 개념 부재 스위스 연방헌법(1999년)과 한국 헌법(1987년)은 의미심상한 차이를 보여준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26조는 “소유권의 보장”이고 제27조는 “경제적 자유” 조항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경제적 자유는 보장된다. ②경제적 자유는 특히 직업선택의 자유와 자유로운 사적영리활동의 참여와 그 자유로운 영위를 포함한다”   노동권은 본질적으로 재산권이나 경제적 자유권에 대한 침해이기에 권리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28조는 노동권 관련 조항인데 다음과 같다. "①노동자와 사용자, 그 조직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단결하고, 단체를 결성하고, 단체에 가입하거나 가입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②쟁의는 가능하면 협상이나 중재로 조정되어야 한다.③파업과 직장폐쇄는 그것이 노동관계에 관련된 것이고, 노동평화의 유지의무나 조정교섭의무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 허용된다.(중략)"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다음과 같다. "①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③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한국 헌법은 노동자와 노동조합 역시 사용자 및 사용자단체와 마찬가지로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노사간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착취-피착취 관계 내지 갑을 관계가 얼마든지 역전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다.   노동자는 약자라는 것을 전제로 온정주의가 거세게 흐르고 있다. 이 온정주의는 대기업 노조에 의한 협력업체와 주주에 대한 약탈(지대추구)=재산권 침해에 둔감하게 만든다. 이는 노조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는 현대기아차와 공기업 등에서 그 패악이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 지배적인 정서와 문화에는 사적 자치의 기본인 대항력의 균형 내지 무기의 대등성 개념이 없다.   6)위험완충체계 개념 부재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낡은 위험 분산완충 시스템은 붕괴되었지만, 새로운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외환위기와 김대중의 4대개혁(기업, 금융, 노동, 공공)를 계기로 ‘주식회사 한국’ 시절에 기업-금융-정부-노동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위험 분산완충(risk hedging) 시스템이 거칠게 붕괴되었다. 그런데 낡은 위험 분산완충 시스템은 붕괴되었지만, 새로운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기업은 금융과 부채로 인한 리스크를 훨씬 크게 느끼게 되었다. 2000년을 전후한 시기의 대우, 동아, 메디슨과 최근의 STX, 동부 등 주요 재벌 대기업의 파산 혹은 은행주도 구조조정 과정을 통하여, 한국 금융은 관의 보호, 간섭 아래 성장하여 덩치는 크되 머리는 나쁘고, 부모(관) 눈치나 보는 비만아나 다름없는 존재로 판명 되었다. 금융의 노하우와 행태가 저열하고 예측불허면 기업들은 금융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나라에 비해, 현금 보유량을 더 늘리고, 부채 비율은 더 줄여야 한다.   한편 적어도 2010년 까지는 중국은 거대한 기회 요인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거대한 위기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산업과 기술의 특성상 중국의 도전에 매우 취약하다. 우리의 10대 수출 품목이던 석유화학, 철강, 조선, LCD, 휴대폰 산업 등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 기업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정규직 직고용에 따른 리스크가 훨씬 크다. 특히 대기업의 고용 리스크, 즉 구조조정 리스크와 비용은 그 어떤 나라 보다 크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 국내외 아웃소싱, 자동화 투자를 통한 단순 노동력 축소(구축)은 세계 보편적 현상인데, 한국 기업들은 한국 특유의 위험 때문에 훨씬 더 적극적, 공세적으로 행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은 거의 모든 규제는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주어지기에 대기업이 되었을 때 떠안게 되는 의무, 부담이 너무 많다. 뿐만 아니라 지대추구를 핵심 이념으로 한 노조의 조직력과 투쟁력도 여간 커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수익 전유-책임 외부 전가는 기업으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영 전략이다. 임금=비용 격차를 활용한 아웃 소싱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국내 투자및 직고용 기피와 과잉 건전화는 기업으로서는 너무나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격차는 더 확대 될 수밖에 없다. 가계는 주로 국내의 생산과 소비 활동에서 소득을 얻지만, 기업은 전지구적 차원의 생산과 판매 활동에서 소득을 얻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는 훨씬 센 중국리스크, 고용리스크, 금융리스크, 법규제리스크(정년 연장법, 청년고용할당제, 최저임금 규제, 비정규직 규제, 노동시간 규제 등), 사법 리스크(통상임금, 휴일근로, 회계조작, 배임 등)로 인해 다른 나라 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경영을 해야한다. 한국기업이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 특히 대기업화를 꺼리는 것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바뀐 위험, 완충 시스템과 한국 특유의 고비용 구조를 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상속 문제로 인한 어려움과 재벌 지배구조 상의 결함(무능한 2세, 3세, 4세 승계 등)까지 있다.   7)정치 및 정부의 능력속성과 규제 특성 몰이해   헌법 제9장 경제 조항(제119조~제127조)에는 국가의 규제, 조정, 보호, 육성, 계도 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이 주체는 "국가"인데, ‘정치공동체’를 의미하는 ‘나라’라는 의미로 썼지만, 현실에서는 대통령및 중앙정부와 국회다.   규제를 국가가 개인, 기업, 민간, 시장, 사회에 강제하는 어떤 기준이라고 본다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규제가 많아야 하고, 많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불균형이 심하고, 사회(공동체)는 전반적으로 모래알인데, 군데군데 존재하는 조직화된 이익집단(노조, 협회 등)들은 지대추구적이며, 그에 따라 개인들조차도 국가의 보호, 보장, 보증, 규제 등을 원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수많은 의무와 부담을 가하는 것은 조선왕조 이래 왕과 신료(관료)들은 (무력만 강한 장군이나 세습 영주의 자식이 아니라) 엄격한 수양을 통해 인, 덕, 예가 높은 경지에 달한 군자라는 관념 때문에, 또 유교 이념 자체가 ‘합성의 오류’ 혹은 아담스미스적인 ‘사익의 공익(공동선)’ 전환 개념이 없이, 인간의 수양과 선의에 공익(공동선)을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뿌리깊은 역사, 문화와 경제사회 구조가 (시장만능주의 보다 패악이 훨씬 큰) 법규제 만능주의를 낳았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규제 문제가 유달리 심각한 것은 사회는 비용-편익-위험을 냉철하게 타산하여, 사업자와 이용자와 감독기관의 권리-의무, 권한-책임 등 규제를 만드는 장치=정치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987년 이후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한 민주, 진보, 노동 세력의 시장및 규제에 대한 인식이 친규제, 친노동, 반시장, 반기업, 반경제적자유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악덕은 시장이나 돈을 매개로 민간(기업과 사람)의 탐욕(욕망)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한국 진보를 통할하는 이데올로기는 민간(기업과 사람), 이윤(탐욕), 돈, 효율과 공공, 생명, 안전을 대립시킨다. 단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은 규제개혁을 아예 규제완화로 읽고, 공공성 훼손을 먼저 연상한다. 규제완화는 기업주의 돈벌이와 자본의 이윤추구을 돕고, 생명, 안전, 공존 등의 가치를 침해 한다고 본다. 세월호 참사도 규제 완화의 산물로 해석한다. 이 역시 오랜 경험적 사실규제완화의 기업 편향성--과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결합된 알러지 반응 일것이다.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기업주의 돈벌이와 자본의 이윤추구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규제완화 정책 하에서는 철도와 항공도 위험하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모든 규제완화가 선은 아닙니다. 인권 관련 규제,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 공정한 시장을 위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오히려 악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국정기조는 생명안전공존 등 사람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무시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인권이 위협받고 인명이 경시되는 위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우현’으로만 기울어온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 때문입니다. (문재인 특별성명, 2014.5.20)  
  이렇듯 사건, 사고가 생기면, 그 위험이나 참상에만 주목하여 비용 생각 안하고, 강한 규제=높은 표준으로 시장을 옭아 매버린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규제는 지방의 자율성이 별로 없다. 사람, 기업, 지역의 처지, 조건이 천차만별인 5천만 대국에서 전국적, 일률적 규제가 가해지면, ‘악’ 소리가 나는 곳이 부지기수 일수 밖에 없다. 이것이 규제가 암으로 원수로 손톱 및 가시로 인식되는 이유 중의 하나 이다.   냉철하게 비용-편익 분석 하지 않고, 가치(산업)생태계 전반을 보는 눈이 없고, 사후적으로 문제 터지면 담당 관료만 ‘조지려 드는’ 풍토에서는 ‘잔디 마당의 잡초를 제거’ 하라는 법령에 대해서는 마당 전체를 아예 시멘트로 발라버리고, 화분 크기 만한 구멍 몇 개를 뚫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착한 관료를 갖다 놔도 결국에는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사실 관료의 본분은 자기 책임 영역 하나는 확실히 수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잉 규제로 인한 패악(부작용)은 서서히 나타나기에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소 규제 혹은 규제 완화로 인한 패악은 폭발적으로 분출하기에 책임을 추궁 당한다. 외환위기, 신용카드 사태, 세월호 참사는 그 기념비다. 게다가 한국 정치는 기업이나 사회나 개개인으로 하여금 지뢰밭을 걸어가게 해 놓고서, 지뢰(대형 정책사고)가 터지면, 대개 관료(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다. 부정비리를 찾아내려는 먼지털기식 감사가 뜨고, 검찰의 표적 수사가 들어온다.   당연히 정치권이나 여론이 규제 강화, 공무원의 권능 강화를 요구하면 전광석화처럼 움직인다. 책임 질 일은 줄어들고, 자신의 권능도 강화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제 완화나 폐지 요구에는 굼벵이가 된다. 책임 질 일은 늘어나고, 권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관료 입장에서는 규제를 늘리고, 기준을 올리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로 인해 민간 사업자는 엄청난 고통과 불이익을 당해도, 시장생태계가 규제에 감겨 죽어도 관료는 아무런 고통과 불이익이 없다. 그래서 민주/진보 세력의 규제관은 관료로서는 너무나 구미에 맞는 생각이다. 산업 생태계가 고사할지라도 그것은 관료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료의 규제는 최근에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의 인증 제도, 기관의 홍수로 나타난다. 금융, 교육, 보건의료, 연안해운, 교통, 통신, 제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자격(공인), 시설, 장비, 인력, 고용임금 조건(정년, 연금, 5대보험, 해고요건) 등이 점점 강화, 상향된다. 대체로 소비자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으니 국가(공무원)가 인증제도도 공급자(상품서비스)의 질을 관리해 주겠다는 명분이다. 한국의 법과 규제의 기준은 해외에서 베꼈거나, 담당 관료의 면피와 권한 확대를 위해 높고 경직되게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저열하고 변화무쌍하다.   이 간극을 관료와 기업들은 위선, 변칙(임기응변), 편법, 로비와 관료의 적당한 봐주기로 때워왔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이런 적폐가 낱낱이 드러났지만, 정작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 그 실체가 모호한 진실, 진상 규명 과 정치적 책임 공방으로 제도, 문화, 관료 개혁 에너지를 거의 소진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8)정치의 자기책임 망각   양극화와 재벌에 대한 인식은 정부 여당의 주요 인사의 관련 발언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문재인 “경총도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 중 한 축”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재벌들이)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비정규직을 나쁜 일자리로 만든 주체가 할 말이 있느냐”  
  이는 문제의 구조와 원인을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정부의 문제와 기업의 문제, 제도의 문제와 사람(기업)문제를 거의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산업구조, 고용체제(노동시장), 금융시장, 사회적 유인보상(인센티브)체계, 국가 지배운영구조(거버넌스) 등을 뜯어 보면 기본적으로 일자리가 안 생기게 되어 있고, 사람은 안 태어나게 되어 있다. 사람만 안 태어나게 생긴게 아니라, 새로운 산업, 기업, 기술, 상품도 태어나기 힘들게 되어 있다. 창의와 열정이 분출하기도 어렵고, 혁신과 도전도 일어나기 힘들게 되어 있다. 아무리 실험실에서 창의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많이 생겨나도 산업화, 기업화는 힘들게 되어 있다. 당연히 새로운 일자리도 잘 안생기게 되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우는 거대한 산업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와 도전에 대한 대응도 안되게 되어 있다. 사람(인재), 돈, 관심, 행동 등을 규율하는 인센티브 체계도, 국가와 사회를 지배운영하는 구조(거버넌스)도 후진적이기 이를데 없다. 따라서 미끄럼틀은 있으나 사다리는 없다. 그래서 더 더욱 기득권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위기=망국 징후는 기본적으로 전략적 선택을 하고, 이해관계자의 힘의 균형을 잡아 인센티브-거버넌스 체계를 만들고 고치는 정치의 부실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인구 구조는 약탈 체제에 대한 미래 세대의 복수이다. 그런데 정치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인 정치개혁, 정부개혁, 공공개혁을 외면하고, 문재인정부와 여당은 적반하장으로 재벌개혁 지방자치개혁 등을 떠벌이고 있다.   9)거대한 착각; 조선의 덕(德)과 문재인정부의 공정(公正)   조선 역사를 살피다 보면 왕의 덕 내지 엘리트의 인격수양(수기치인)에 대한 집착 내지 침잠의 패악을 절감하게 된다. 부국강병이나 식산흥업으로 가야할 사회적, 정신적 에너지를, 밑도 끝도 없고 실체도 모호한 "덕"과 "인격" 수양에 가둬 버렸기 때문이다.  
  매천야록이 소개한 고종 시대의 일화다. 고종이 즉위 후 열린 경연(經筵)에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연운(燕雲)의 땅에 말을 몰아 우리 조종(祖宗)의 치욕(병자호란의 치욕)을 씻는단 말인가” 이에 오늘날 대통령 국방비서관에 해당하는 무승지(武承旨) 신정희(신헌의 아들)는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면서 “전하께서 덕(德)을 닦으시옵소서”라고 답했다.  
  이 외에도 "덕"만능주의나 "인격수양(수기치인)"만능주의를 보여주는 문답이나 사고방식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조선의 "덕"이나"인격" 수양처럼, 우리 사회적, 정신적 에너지를 엉뚱한데로 몰아가서, 물질적문화적 생산력을 억누르는 가치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공정"이다.   “공정”이라는 가치는 나도 꽤 많이 강조했는데,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출발선의 평등, 기회의 균등을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개인과 가족의 자조, 자립을 도우는 정책에 주목하게 된다. 대체로 복지, 교육, 사회투자국가 담론으로 연결된다. 당연히 지금도 중요한 정책(담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이 사적자치 영역(시장과 사회) 내지 경제사회 주체 간의 관계(거래)에 깊숙히 개입하면서부터다. 공정은 정의처럼 원래 애매모호하다.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나 교섭력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공정" 판관(관료와 정치인과 여론)의 도덕 감정에 따라서도 오락가락한다. 또한 처지와 조건이 천차만별인 당사자가 합의한 가격(거래조건)을 제3자(정부나 도덕군자)가 함부로 불공정하다고 판단할 수가 없다.   게다가 불공정이나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인이 많아서, 자칫 전혀 엉뚱한 존재를 그 원흉으로 지목하여 마녀사냥질을 할 수도 있다. 인류가 축적한 지혜는 이 난해한 문제를, 잘 작동하는 시장과 국가(민주주의)를 통해 해결하려 해왔다.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네 맘대로 하라” 내지 “간섭하지 말라”는 존스튜어트밀의 자유주의 사상도 받아 안았다.   그런데 유교/성리학을 신봉한 조선은,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엘리트가 생각하는 윤리/도덕이 충만한 이상사회를 지향하였다. 소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려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선의 주체는 권력자/통치자/지배집단이다. 이들은 선/윤리/도덕/정의/공정을 어린 백성에게 가르치고, 강제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를 가르치고 강제하기 전에 먼저 성찰하고 통찰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 못하였다.   게다가 공자가 강조한 가난하지만 즐거워하고(貧而樂),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하는(富而好禮) 태도는 주목하지 않았다.   [ 그 결과 지금 한국에서는 "공정"과 “정의”의 모호함, 난해함, 폭력성을 알지 못하는 국가권력이 단순무식한 조직폭력배가 되어 돌아다니며, 강자로 간주된 존재들에게 주먹질()과 족쇄질()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공정 담론은 너무나 편협하고 편향되어 있다. 거의 자본, 재벌대기업, 원청(민간), 프랜차이저 가맹점, 대형마트, 건물주의 횡포만 주목한다. 이들의 처지 조건이 천차만별이고, 갑-을 관계가 얼마든지 역전됨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극단적인 사례(궁중족발 사건, 일감몰아주기, 기술탈취 등)를 가지고, “탐욕스러운 강자”와 “착한 약자”프레임(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층위에서 갑질이 행해지기에, 동병상련자가 많아서 그런지 이런 프레임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프레임은 자본, 재벌, 대형마트, 건물주 등을 탐욕의 화신이거나 범법자로 규정한다. 따라서 국가의 규제와 형벌(엄벌)을 통해서 이들 못된 강자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들은 부당하게 얻어맞고, 진짜 주먹질과 족쇄질을 당해야 할 진짜 불공정의 원흉은 자본, 재벌 뒤에 숨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한국 공정담론만큼 불공정한 것도 없다.   첫째, 불공정/갑질의 지존이자, 불합리한 규제, 보호와 형벌의 책임자인 정부/공공/정치 갑질을 빼놓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축적한 지혜는 원래 애매모호하기 마련인 정의/공정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장치는 시장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시장에서 이뤄지는 상거래는 공급자와 소비자가 합의 해야(만장일치해야) 성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유럽, 미국, 일본, 중국에 비해, 잘 작동하는 시장의 대전제인 공급자와 수요자 자체가 적다. 거래당사자 간의 상호선택권과 거부권(대항력)의 비대칭성이 심하다. 또한 수요자/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독과점화 된 영역이 너무 많다. 이렇듯 시장의 허물을 침소봉대하여 불공정의 산실로 몰아부치면서, 은근슬쩍 국가권력이 정의/공정의 판관 자리를 꿰차버렸다고나 할까   분명한 것은 불공정은 대체로 우월적 지위를 활용한 횡포(갑질)는 거래 당사자간의 선택권 및 거부권의 제약 내지 격차에서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도나 정보 비대칭성을 통해 독과점을 부여 받은 정부, 정치, 정당이야말로 최대의 불공정행위자 내지 갑질범이다. 아무리 불량한 서비스(규제, 예산, 형벌, 정책, 인사, 감사 등)를 제공해도 응징하거나 거부할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분권이라도 많이 되어 있으면, 기업은 해외로 뜨기 전에 공공서비스(규제, 정책, 예산, 인력 등)가 괜찮은 지방을 먼저 찾아 헤맬 것이다. 기업의 지방정부 쇼핑은 지방정부로 하여금 더 나은 공공서비스 공급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경쟁이다.   둘째, 불공정 행위가 일어나는 복잡미묘한 현실(실물)을 모르는 강단학자/법관/검사/정치인/논객들의 "인상/느낌"과 관료/노조원 등 성안사람들(지대 수취자)의 편협하고 철없는 도덕 감정으로 불공정을 정의하고, 단죄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비정규직 제로화, 직고용 명령, 노조에 편파적인 수사와 경제민주화 담론 등이 대표적이다.   실물을 모르는 강단 학자, 검찰, 법원, 관료, 정치인들의 "인상/느낌"은 홍영표식의 지독한 무지(삼성이 번 돈은 협력업체 쥐어짠 결과 운운)나 몇몇 극단적인 사례를 근거로 만들어진다.   셋째, 경제는 원래 파이를 만들고, 이를 적절하게 나누는 것인데, 전자는 완전히 백안시하고 후자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한국의 민주/진보/노동/시민을 표방하는 세력들이 취업하고, 직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198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86세대의 20대~40대)는 한국경제가 너무나 잘 나갔다. 중국이 잠자고 있을 때 먼저 세계 시장으로 내 달린 한국경제의 선출발 효과가 살아있던 시절의 단편적인 인상이 굳어지면서, 정치와 정부의 일은 오로지 정의/공정만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격차(불평등, 양극화) 해소가 최고, 최대의 가치로 되고,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가 핵심 해법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30년에 걸친 중국의 당-정부-산업의 혼연일치 추격과 추월로 인해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력 산업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거제, 창원, 울산, 포항, 군산, 인천 등이 한 때 미국 제조업을 선도하다가 고철로 전락한 디트로이트 등 러스트(Rust) 벨트처럼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문정부와 민주/진조/노동과 86세대에게는 이런 위기가 보이지 않는다.   넷째, 불공정 해소의 기본 해법이 국가권력의 관여, 개입 영역과 수단을 확대하고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협력업체, 세입자, 을 등의 자조와 연대 혹은 선택권과 거부권을 강화하는 것은 백안시 하고, 오로지 정부와 공공기관의 손에 더 큰 몽둥이와 더 강한 족쇄를 쥐는 것으로 달려간다는 얘기다. 이재명의 근로감독관 10배 증원론이 전형이다.   그 결과 문재인정부들어 공정/정의를 파는 권력기관들; 법원,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공정위, 금융위, 고용부 등이 물 만난 고기처럼 되었다. 털어내고, 잡아넣고, 강제하고 난리도 아니다.   총체적으로 문재인정부의 현실인식과 중시하는 가치가 너무 시대착오적이다. 문정부와 민주/진보/노동 세력과 86세대의 현실인식과 가치는 과속이 일상이고 과속으로 인한 대형 사고가 많이 나는 고속도로 관리자가 상황이 완전히 일변한 시대에도 과속 단속에 골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과속 감지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하고, 범칙금을 인상하고, 안전거리와 안전띠 위반 차량도 단속하고, 과속 방지턱까지 설치했지만, 상황이 변하여, 오가는 차량 자체도 적고, 과속이 문제가 아니라 저속이 문제라면   문재인, 김상조 등이 휘두르는 공정 담론 가장 치명적인 패악은 한 사회의 성장발전의 엔진이자, 물질적문화적 생산력 선도자 역할을 하는 창의든, 열정이든, 탐욕이든 에너지가 넘치는 모든 기업과 개인을 도덕과 법규제로 옭아매고 억압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해외에서 매출 이익의 80~90%를 얻는 재벌들에게 하는 짓이 그런 것이다. 경제사회 발전의 엔진은 급속도로 약화되는데, 브레이크만 급속도로 강화되는 나라의 말로는 뻔하다. 바로 덕 만능주의, 인격수양 지상주의로 망한 조선이다. 공정은 잘쓰면 명약이지만 과하면 독약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너무 과하게 쓰고, 또 엉뚱한데다 쓰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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