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갈등 수준과 내용이 극단적으로 저질화 된 이유

민주진보 세력의 거의 모든 포지티브한 비전이 파탄난 상황

김대호 승인 2023.07.14 18:29 의견 0

1987년 이후 36년을 복기해 보면,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6년 간은 그 전에 비해 정치적 대립 갈등이 훨씬 격렬해졌다. 정치가 전쟁처럼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립 갈등 수준이 훨씬 저열해졌다. 이런 느낌은 객관성이 있을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객관성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김대중, 노무현이라면 후쿠시마 괴담 소동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설사 민주당이 국회 다수의석을 가졌다손치더라도 적어도 검수완박법,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같은 법은 강행처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퇴임 대통령 사저 경호인력을 27명에서 65명으로 늘리는 염치없는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 폭등, 공공부문 폭증, 양대지침 폐기, 9.19 군사합의 같은 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 2명에게 사실상의 무기징역을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조국 같은 위선자를 법무장관에 기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정비리 혐의가 거의 드러난 상황에서 버티는 짓은 더더욱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같은 자를 당대표-대통령후보-경기지사는 커녕, 2010년 성남시장 후보로 공천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권 초심을 간직한 사람들이나 김대중•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좀 아는 사람들(조기숙, 김병준, 김한길, 박주선 등)이 볼 때, 문정부와 민주당의 좌익화, 퇴행화, 부패타락은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어느 정도 그랬지만, 정치의 본말전도와 사생결단의 전쟁화는 지금이 훨씬 심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압도적으로 문재인과 민주당 때문이다. 단적으로 국민의힘은 보수/국힘과 진보/민주당에 대해, 우리는 건국산업화 세력, 당신들은 민주화세력 혹은 우리는 ‘더 큰 대한민국’을 추구하고, 당신들은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추구해왔다면서 상호존중의 언어를 썼다. 하지만 문재인과 민주당은 촛불시민혁명이니 적폐니, 수구냉전기득권 검찰독재 전쟁획책세력 운운하며 보수를 청산, 척결, 궤멸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언어를 많이 썼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보수(당시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가 오히려 대립과 갈등, 적대와 증오를 격화시키는 쪽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어쩌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버렸을까? 첫째는 당의 핵심 지지층이 호남향우회에서 (가설검증-성찰반성-역사적 책임의식이 곤두서있는) 운동권 전위대/엘리트가 아니라, 김어준 같은 후위대와 정치적 훌리건(이른바 개딸)으로 물갈이 된 탓이 클 것이다.
이들은 정치를 선악, 정사, 정의-불의, 친일-항일, 평화-전쟁 등으로 재단하면서, 자신은 정의의 편에 섰다고 자만하고 자위하고 있다. 보수/자유/우파를 다른 방식으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리되면 자신의 허물이나 악덕에 관대해 진다. 그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들은 소악, 상대는 거악이 된다. 내로남불, 적반하장, 위선, 거짓이 거악과 싸울 때 필요한 기술이 된다. 자신은 항상 정의 편, 약자 편, 민주 편, 평화 편에 서 있다는 자의식은 복잡한 머리를 정리해주고, 속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정치사회적 해악은 여간 크지 않다.

여기에는 조선의 이념적 문화적 유산도 일조하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민족주의 정서도 일조하고, 맑스주의 잔재도 일조하고, 대한민국의 후진적 현상은 무조건 보수 탓으로 생각하는 (해외 물 좀 먹은 생각짧은 젊은 전문가들의) 단순무식한 진단 내지 출구를 잘 못찾은 분노도 일조했을 것이다. 아무튼 인터넷-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김어준 같은 자가 무슨 민주진보 동네의 교황(논쟁 종결자-거대 스피커 등)과 비슷한 위상으로 올라간 것도 주효했을 것이다.
길 닦아 놓으면 거지가 먼저 지나간다고, 손학규가 허영심에서 당의 문호를 개방하자, 거지 같은 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당의 저변을 장악해 버렸다고 할 수있다. 이 결정적인 계기가 2011~12년의 문성근의 백만민란이 아니었나 싶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복수심이 넘치는, 정의감은 서 있지만 단순무식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둘째는 그럴듯한 포지티브 비전이 거의 파탄이 난 것이다. 남은 것은 네가티브 악담 뿐이라는 얘기다. 민주당이 이름과 이력에 걸맞게 국가•정당•시민단체를 더 민주적으로 운영할 것 같은 느낌, 예컨대 대화와 타협에 힘써고, 소수 의견도 잘 존중하고, 절차와 원칙도 잘 지킬 것 같다는 느낌이 완전히 파탄났다. 조직운영이나 공직인사나 이권배분을 최소한 보수 보다는 더 깨끗하게 하리라는 믿음도 파탄났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정책적으로는 좀 무능해도 더 도덕적일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평화와 화해협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도 파탄났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보편적 복지국가-소득주도성장 정책-친노동(최저임금, 주 52시간,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공부문 팽창 등), 친노조 정책이 더 평등하고, 더 안정적이고, 더 기회와 일자리가 많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믿음도 파탄났다.
반제반봉건(동학과의병)운동-항일독립운동-반독재민주화운동-김대중노무현정부-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세력이라는 신화는 역사적 진실 앞에 완전히 거짓과 사기로 판명되었다.


요컨대 민주당이 30년 동안 팔아온 모든 포지티브한 가치와 비전, 즉 민주주의 발전,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햇볕정책과 한반도평화,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불평등 양극화 해소 등이 파탄난 상황에서, 생존의 길은 오직 거짓 왜곡 선동으로 경쟁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것 뿐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의 간판 가치인 민주, 진보, 개혁, 도덕, 양심, 평화, 평등, 노동 등 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보수에 비해 비교 우위를 주장할 만한 것도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비과학, 비이성, 몰상식, 무논리로 점철된 각종 괴담 소동은 팔 것이 더 이상없는 정치집단의 발악이다.

셋째는 문정부와 민주당이 권력이라는 마약으로 특정 지역/학연을 중독시켜서 야기된 일종의 금단 현상이다. 권력으로 특수관계자와 지지층에게 제공한 예산, 인사(승진, 보직, 채용, 전환 등)상 너무많은 특혜가 윤정부 출범으로 갑자기 끊어지니 적대와 증오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문정부와 민주당은 호남과 40대 화이트칼라와 운동권 건달들에게 사실상 마약을 너무 많이 투약하였다. 민주당은 호남 소외와 낙후, 그리고 5.18의 피와 김대중의 고난 등을 뒷배로 하여 예산과 규제의 특혜적 할당도 주도하였다. 한전공대, 아시아문화전당, 각종 농업 보조금, 5.18 유공자법, 광주글로벌모터스 등.

배훈천 제공


배훈천 제공


또한 SNS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외환위기로 큰 낭패를 봤던 세대(1970년대 후반생부터 1980년대 생) 화이트칼라에게도 큰 선물을 줬다. 바로 경직된 주52시간 규제다. 최저임금 폭등과 공공부문 81만개및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당사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특혜이다. 가장 큰 특혜는 정부와 공공기관 등에서 인사상 특혜일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인사에서는 공정인사(실력 중시), 지역/학교 안배/균형 인사 등이 완전히 사라졌다. 승진/보직/채용/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민주당과 지연, 학연 등으로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거의 잔치를 벌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금 윤정부와 국힘에 대한 비이성적 적대와 증오는 이 세가지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병리현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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