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 플랫폼,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김대호 승인 2023.09.28 16:55 의견 0

자동차의 기본 기능은 달리고(run), 돌고(turn), 멈추는(stop) 것이다. 이 기능을 담당하는 엔진, 변속기, 차축, 바퀴, 브레이크 등과 이들을 단단히 엮은 강고한 철골 구조를 통틀어 차대=플랫폼(platform)이라 한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플랫폼이 차의 정체성이나 성능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기능부라면, 눈에 잘 띄며 변신이 용이한 외관(도어, 도색 등), 시트, 오디오 등은 주변적인 기능부다. 그래서 하나의 플랫폼에서 승용차, 트럭, 승합차 등 겉모양이 전혀 다른 차가 나온다. 신차 개발비의 대부분은 플랫폼 개발비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윈도우, 리눅스, 아이폰,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도 플랫폼이라 한다. 생산자나 소비자가 모여들어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가치도 창출하고, 상거래도 하는 장터나 비즈니스 허브(hub)도 플랫폼이라 한다. 영어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당의 강령이나 대선후보의 정책공약집을 platform이라 불렀다.



윤석열정부의 국정철학과 국정과제를 정리한 인수위 백서와 120대 국정과제는 윤정부의 국정운영 플랫폼이다. 부처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의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정리한 ‘다시 대한민국’(부제: 2023년 업무보고로 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철학)도 국정운영 플랫폼이다. 이렇듯 다양한 용례를 종합하면 플랫폼은 부품, 프로그램(어플리케이션), 기능, 사업(비즈니스), 정당, 정부 등이 부여된 소임을 잘 하도록 돕는 토대 혹은 운영체제다. 윤석열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도 플랫폼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국정과제 11번은 제목이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이다. ‘다시 대한민국’에서도 플랫폼이라는 말이 9번 나오는데, 그 중 4번이 ‘플랫폼 정부’다.


윤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국민과 기업, 정부가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정부입니다…(과거 정부가 창출한 가치가 10가지라면) 이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타서 양방향으로 소통을 하게 함으로써, 창출될 수 있는 행정 서비스의 가치가 100가지, 1000가지가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윤대통령이 말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하여 국민, 기업, 정부가 공유하여, 새로운 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정부다.


그런데 디지털 데이터 보다 천배 만배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정권의 서사와 시대인식과 국제정세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정권의 서사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고, 시대인식은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고, 국제정세 인식은 세계•동북아가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윤정부와 국민의힘은 국제정세 인식의 중요성은 알아도 정권(정부+여당+열성지지층)의 서사와 시대•위기 인식은 그렇지 않다.

국제정세는 흔히 대외 여건이라고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세계적 관심사요, 외치(외교•안보•통상+북한•통일•방첩) 정책의 대전제이다 보니 관련 석학이나 해외 큰 정치인의 언설을 복사•붙이기만 해도 된다. 역대정부들은 4마리 코끼리(미중일러)와 1마리 창틀에 갖힌 야수(북한)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과 해외 시장과 교역(금융, 수송 등)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특성으로 인해, 국제정세 변화에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유일한 예외는 문재인 정부였다. 다시말해 문재인 정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들은 국제정세 인식에는 소홀하지도 둔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시대인식=국내정세 인식은 노태우 정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부들이 예외없이 소홀했고, 혼미했다.

시대인식의 핵심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밀려오는 위기의 현상, 본질, 구조•원인을 파악하고, 동시에 얽히고 설킨 위기간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대관세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사고의 시공간 확대•확장이 필요하다. 국가 간 비교, 과거•현재•미래 간 비교, 이상(이론)과 현실(실제) 간 비교를 통해 도출된 차이나 괴리에 대해, 그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노태우 정부가 예외가 된 것은 1987•88년의 국내정치적 격변(민주화 시대의 개막)과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중심국인 소련의 내파(해체)라는 세게사적 격변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국내적, 국제적 대전환기 였기 때문이다. 1987년 컨센서스가 나름 개혁적 의미를 띠고 있었던 김영삼 김대중 정부까지는 시대인식이 (국민 요구, 역사신=역사이성의 요구, 지구촌의 요구의 총체인) 시대정신 및 정부의 시대적 소명과 괴리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으나,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는 크게 어긋났다고 보아야 한다. 시대인식(국내정세인식)과 시대정신 및 시대적 소명 간의 괴리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로 가면서 점점 커졌다가, 윤석열 정부에 의해 다소간 좁혀졌다. 하지만 불행히도 윤정부의 그것은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운영 플랫폼과 공직인사 등이 그 징표다.

지금 시대인식의 과제는 인구·지방·재정·연금·건보•주력산업의 지속가능성 위기 등으로 불거지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이상·퇴행·쇠락·내파 위기의 양상과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장님코끼리 만지기 식의 진단과 대안이 난무하기 십상이라, 천의 얼굴을 가진 한 시대를 종합적, 균형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여간 어렵고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권의 서사도 마찬가지다. 서사는 감동적인 줄거리가 있는 라이프 스토리(life story)다. 핵심은 나(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인)와 우리(국가, 진영, 정권 등)는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적 조상과 함께,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온 대립물을 얘기해야 한다. 장밋빛 약속과 비전은 소구력이 별로 없다. 요컨대 정권의 서사는 과거(조상, 고난, 업적) – 현재(자신과 당면 과제) - 미래(비전)를 관통하는 어떤 흐름(줄거리)으로 설명해야 자부심도 생기고, 국민적 소구력도 생긴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자유•보수•우파의 진영 서사=정체성은, 미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문명을 전향적으로 수용하여, 분투노력하다가 1898년 만민공동회로 결집하여 문명개화와 독립 민주공화국 건설을 외치며 장구한 개화•독립투쟁을 전개하여, 마침내 건국, 호국, 부국과 근대화를 이룩한 위대한 근대화혁명세력이다. 지금은 남과 북에 똬리를 틀고, 민주•진보•민족•민중 깃발을 흔들지만, 본질적으로 반근대화 조선회귀•중국회귀 세력과 싸우고 있다.

그런데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념이나 정당을 초월한 국가 서사를 정립하고 공유해야 한다. 다시말해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을 비롯하여 50개 가까운 정당들은 모두 대한민국 서사=정세성(, 즉 건국의 아버지들과 건국 정신을 공유해야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세계 패권국이거나 패권국이었던 미국,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패전을 통해 한 때는 온 국민이 동의한 가치, 정책, 리더십이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 일본, 프랑스 등도 주요 정당들이 다 동의하고 존중하는 서사가 있다. 이 서사는 헌법(전문 등)에 다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암묵적 컨센서스로 존재하는데, 거의 모든 정당들의 노선과 활동의 대전제로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서사는 것은 무엇인가? 서구 문명을 가장 늦게 만난 문명국으로, 근대화는 늦었으나, 19세기 말~20세기 중반까지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벌인 선각자들의 분투노력과 미국 등 연합국의 승리에 힘입어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이승만 등 건국의 아버지들의 피땀과 지혜로, 기본 틀(자유민주주의, 공명선거, 의회제도, 시장경제, 토지개혁 등)이 훌륭한 민주공화국을 만들엇다는 것,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정부들은 각자 나름의 시대적 소명을 잘 이행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출발 조건은 가장 열악했으나, 산업화 민주화 등 그 성취는 가장 대단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 그리고 한민족이 한반도와 그 인근에서 세운 나라 중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 북한은 완전한 실패 국가라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은 오욕도 있었고, 오류도 있었지만, 기본 틀(가치와 이념 등)이 좋아서, 이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제도와 정책을 수정보완하면, 또 한번 위대한 중흥시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한민국 서사는 정치인과 모든 공직자와 국민들이 공유해야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개혁과 혁신의 열정도 생긴다. 그런데 자유보수는 자기(진영)서사도 제대로 정립하지 않았고, 대한민국 서사도 제대로 정립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광복절과 건국절 논란, 임시정부 법통 논란, 국군의 뿌리 논란, 김구 논란, 친일 청산 논란, 분단과 전쟁에 대한 책임 논란, 이승만 박정희 논란 등이 그 기념비다.

국정운영 플랫폼에는 대한민국 서사와 자유보수 진영 서사가 정리되어 시대인식-시대정신-시대적 소명과 국정철학및 국정과제를 뒷받침해야 한다.

지금 시대는 지난 30~40년 동안 운동권•민주당•문재인정부가 주도적으로 팔아온 가치•이념•정책과 도덕적 우위가 거의 다 파탄났다. 햇볕정책, 경제민주화•소득주도성장•노동권 강화•탈원전과 태양광•불평등 양극화 해소 정책 등 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구시대의 황혼이요, 새시대의 새벽이다. 가치•정책 패러다임을 과감히 교체해야 할 대전환기 내지 혁명적 시기다.

윤정부 국정운영 플랫폼은 정통관료 컨센서스를 1층으로 하고, 그 위(2층)에 지지층이 이심전심으로 공유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열망이 있고, 그 위(3층)에 국민의힘 강령, 100대국정과제•인수위백서•120대국정과제, 노동•교육•연금의 3대개혁,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등이 혼합•중첩된 국정운영 플랫폼이 서있다. 이는 2022년 12월 말부터 1달간 진행된 부처의 업무보고와 그 자리에서 윤대통령이 한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을 정리한 “다시 대한민국”(2023년 업무보고로 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철학)에서 또 한번 필터링되고 수정보완 되었고, 2023년 8월 말에는 “2024년 예산안”으로 정리되었다.

윤정부의 국정운영 플랫폼은 정통(직업)관료의 안목과 이해와 요구가 너무나 진하게 배여있다. 이 플랫폼의 핵심인 인수위백서와 120대 국정과제는 늘공의, 늘공에 의한, 늘공을 위한(늘공의 구미에 맞는) 국정운영 계획이다. 그리고 역대 정부의 인수위백서 중 대통령의 입김이 가장 약한 백서이다. 윤대통령의 정치 이력이나 국힘당과 관계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윤정부의 국정운영 플랫폼은 애초부터 기본설계 내지 개념설계를 건너 뛰고—할 사람도 없었겠지만—, 부품•부분 설계만 한 사람(주로 정통관료와 전문가와 지역 땅개 의원)이 각자 만들어와서 조립한 자동차처럼 되었다. 그래서 꼭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도 될 것이 너무 많다.

대통령제에서는 무조건 국정운영의 기조가 될 수밖에 없는 윤대통령의 철학•가치(인수위 백서 등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와 행정 각부 및 공공기관도, 행정 각부(부품•부분)들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행정각부가 가속 패달이라도 밟으면, 다시말해 각 부처들이 자신의 가치•정책과 이해관계를 강하게 드러내면 큰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윤대통령과 이상민•한동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각료들은 지극히 조심스럽게, 방어적으로 각 부처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원래 인수위 백서의 국정과제도, 행정각부의 업무계획도 정통관료들이 만든 것이기에, 파격적인 것이 별로 없었지만!!

윤정부의 국정운영 플랫폼은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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