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후 운동권과 민주당이 섬겨온 ‘숨은 신’을 말한다.

-대한민국 개념 콘서트(10.17. 오후 2시 까페 인잇 광화문점) 발제문-

김대호 승인 2023.10.16 13:45 의견 0

지난 50~60년 간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간 힘은 압도적으로 국가주도산업화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치열하고 다양한 개화•독립 노력과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건국•호국과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지난 30~40년간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을 끌어낸 주된 힘은 산업화, 특히 중화학공업화 성공을 딛고 이루어진, 민주화, 자유화, 국제화와 21세기부터 확연해진 지식정보화, 저출산고령화, 중국의 정치경제적 부상 등이다. 그런데 유아기 때 잘 맞는 옷이 청소년기에 맞을리 없고, 겨울에 즐겨 입는 방한복을 여름에도 입고 다닐 수는 없다. 가치•이념도 주체의 변화(성장발전)와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화를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아온 거대 정치세력은, 과거에 조선을 실패국가로 만든 위정자들처럼, 요구하고 누릴 줄은 알아도 상응하는 책임을 모르고, 상전벽해가 일어난 대내외 환경 변화에도 눈을 감아 버리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절체절명의 변화와 개혁을 틀어막고 있다. 개화•독립•건국•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지는 150년 근대화 성과를 폐허로 만들려 하고 있다. 19세기에 조선이 똑똑히 보여줬고, 지금 북한이 아프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미중 신냉전과 중국의 부동산 거픔 붕괴, 4차산업혁명, 기후변화 등 전지구적 위기•도전의 의미와 효과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를 논하는 세계적 석학들의 통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특수적 현상 중의 하나인, 완전히 변질된 민주화에 대한 국내외 석학이나 정치가•경세가들의 통찰을 접하긴 어렵다. 오히려 수많은 우상, 미신, 억지로 점철된 1987년•운동권 컨센서스와 그 사제(司祭)인 86운동권의 어청난 패악질에도 불구하고, 과거지사가 된 민주화의 빛만 보며 아부와 찬사만 늘어놓는다. 민주화 세력의 위선, 독선, 무능, 부패가 천지를 진동하는 시기에 출범한 윤석열정부조차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위대한 국민의 성취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루어야 한다” “과거 보수정부가 추구한 ‘더 큰 대한민국’, 진보정부가 추구한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면서 덕담만 늘어놓고 있다.

그런데 이는 사실도 아니거니와, 진보의 가치(더 따뜻한 대한민국)는 피부에 와닿는데 반해, 보수의 가치(더 큰 나라)는 잘 와 닿지 않으니,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처럼 진보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민주좌파와 자유우파로 부르자는 것 아닌가?

진짜 문제는 민주화 세력은 대한민국과 보수를 친일독재, 수구냉전기득권 운운하며 청산, 척결, 궤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독특한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으로 인해 진보는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더 파괴적인 반목•질와 경쟁•갈등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대한민국을 추구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구가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추구해 왔다는 것도 우상이요 미신이다.


1970~80년대부터 재야•운동권이 피땀으로 구축하고, 이들과 연대한 김대중•김영삼이 약간 순화하고, 민정당•민자당이 대체로 동의한 1987년 컨센서스는 이제는 ‘숨은 신’의 형상대로 만든 우상과 도그마로 된 미신의 기둥으로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만신전으로 변했다. 대부분 철거 파쇄 되어야 할 우상과 미신이지만, 정치•사회•문화 권력을 차지한 86운동권 사제들에 의해 결사옹위 되고 있다. 얼빠진 자유보수도 덩달아 섬기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인구•지방•재정•연금•보험•필수의료 등의 지속가능성 위기가 발원한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아발생하는 암 증상과 사회의 총체적인 퇴행•열화•쇠락•내파 위기도 발원한다.

한반도 좌익과 (육지로 연결된) 북중소 3국 합작 침략 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천신만고 끝에 극복한 대한민국은 건국과 호국의 그늘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악성 유산이 지천인 세계최빈국에서 국가주도 외자 의존, 수출•재벌 중심 산업화와 권위주의적 방식의 근대적 질서 구축에 따른 그늘 역시 짙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엄청난 업보가 아닐 수없다.

바로 이 두터운 업보 내지 토양에 뿌리를 두고, 1980년 5.18, 1985년 2.12총선, 1980년대 내내 벌어진 학생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이 심고 기른 것이 1987년 컨센서스다. 이는 기본적으로 건국•산업화와 권위주의적 질서 구축의 그늘을 해소해야 한다는,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광범위한 합의 내지 공감 위에 서 있다. 그런데 그 그늘에 대한 생각은 애초부터 달랐다. 1987년 이후 굳어진 정치지형에서 방어자였던 정치적 주류•자유보수와 공격자였던 비주류•민주진보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

두 세력 공히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자유권을 확대한다는데 대해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후자는 민주화를 독재 타도 혹은 주류•자유보수 청산•척결•궤멸로 읽었다. 독재 앞에는 군부, 공안, 검찰 등을 붙이고, 보수 앞에는 친일, 반공, 반북, 수구, 냉전, 대미예속, 기득권, 기회주의 등을 붙였다. 기본적인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 자체가 대한민국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고, 더 나아가 민주국가라면 어디나 있는 보수와 진보, 급진과 온건, 우파와 좌파의 정치적 대립을 사실상 섬멸•절멸전으로 몰아가니 정치가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과 보수의 내분(반목질시 사분오열)으로 보수의 힘이 약화되고, 진보•운동권이 경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권력과 권위를 확보하자, 오래 전부터 마그마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서 들끓고 있던, 보수와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혐오와 부•권력•명예에 대한 탐욕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물론 조선의 86운동권이었던 사림파들이 일찍이 보여주었던 일이다.

‘반전반핵가’만큼, 민주화 신전에 모셔진 우상의 힘과 폐해를 잘 보여주는 경우는 없다.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 걸고 나가자(중략) 반전반핵 양키고홈!”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이 북한을 핵공격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지금 러시아조차도 우크라이나에 전술핵조차 사용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재래식 군사력이 압도적인 미국이 북한에 왜 핵공격을 하나? 반면에 북한체제는 내일 당장 수령독재체제를 타도하려는 쿠데타나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김씨 일가는 이라크의 사담후세인(2003년)이나 리비아의 카다피(2011년)처럼 비참하게 죽을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핵공격 위협을 날조한 후, 대한민국의 쓸모있는 바보들을 “이 땅의 양심들”이라 추켜세워 ‘반전반핵가’를 부르고 다니게 하였다. 그러면서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처럼, 북핵은 단지 협상용인 것처럼 속여 핵무력를 완성한 후, 이제는 법까지 만들어 대한민국에 노골적인 핵공격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핵폭풍 전야에 선 것은 대한민국의 생존이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없게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되어 버린 것은 북핵이 아니라 햇볕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반핵가’를 불러댄 그 많은 운동권 청춘들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일어난 현실을 모르쇠한다. 이들과 역사(분단과 북한) 인식이 거의 같은 문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 운동권이 섬긴 우상과 미신은 북한 핵과 동해로 방류되는 핵오염수와 중국의 주권침해적 망동에 대해서는 너무나 둔감하게 만들고, 일본 후쿠시마 오염처리수(2023년)에 대해서는 정신병적 발작을 일으킨다. 그래서 반미반일 괴담은 있어도 반중 괴담은 없다.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지난 40년의 국제정세는 냉전(미소 양극) 체제에서 탈냉전(미국 일극, 미중 협력) 체제로, 다시 신냉전(미중갈등과 다극) 체제로 변화해 왔다. 하지만 민주화 신전의 최고위 사제를 했던 문재인은 아직도 탈냉전 시대, 북한 핵무력 완성 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외에도 건국산업화 그늘 해소라는 명분에 동의한 가운데, 자유•보수•우파와 이성•상식파가 촛불에 데이고 취하여, 얼이 빠져 있을 때, 대한민국 곳곳에 너무 많은 우상과 미신들이 들어섰다. 아니 작은 우상이 거대한 우상으로 커져버렸다.

노동자는 약자고, 노조는 약자의 무기고, 법은 자본과 강자의 무기며, 노조 투쟁은 지대추구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정당하다는 미신과 정규직(풀타임, 철밥통 등)은 정상, 비정규직은 비정상이라고 미신이 합작하여 노조를 우상으로 만들었다. 교사(전교조)를 비롯하여 수많은 집단(공무원, 교수 등)이 노조를 롤모델로 삼았다.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신념을 공유하는 특수이익(지대추구) 집단 아니 약탈집단을 롤모델로 삼았다. 이로써 직장의 계급화, 노조의 귀족화와 조폭화, 공공의 양반화가 이뤄졌고, 이는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되었다.

교육의 질을 예산 부족으로 규정하는 미신에 따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여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할당하게 하자, 세수 증가와 학생수 감소가 겹치면서 초중등학교에는 예산 홍수가 고등교육과 평생교육에는 예산 가뭄이 났다. 한국 교육을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으로 만들었다. 교사는 나쁜 강자•가해자요, 학생은 착한 약자•피해자라는 미신이 아동학대 방지법이나 학생인권조례로 만들어, 교사들의 정당한 교권 행사를 막고,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시만 하며 군림하는 벼슬아치처럼 여기는 전근대적 관습을 존치하자, 교실은 정글화 되고, 일선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9차례에 걸쳐 수십 만명의 교사가 참가한 교권 보장시위의 이유다.

검찰의 문제를 수사기소권 등 권한 집중으로 규정하면서, 사법민주화의 이름으로 공수처를 만들고, 검경수사권 분리 아니 검수완박을 밀어붙여 범죄자들만 편한 세상으로 만들었다.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조언을 재판개입으로 몰아 단죄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로 법관의 승진에 대한 욕망을 거세하여, 법률과 양심에 충실한 판결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재판은 이상 지체 혹은 속행되고, 판결은 법관 멋대로가 되었다. 이제 판사의 출신 지역과 정치 성향(편향)에 대한 의심이 점증하고 불신이 깊어졌다.

문정부와 민주당은 경제고용 문제의 핵심을 격차(불평등, 양극화), 좋은 일자리 부족, 불공정(갑질 난무), 신자유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그 해법으로 경제민주화(재벌개혁과 갑질 근절), 보편적 복지, 국가규제(최저임금, 근로시간, 비정규직 등) 상향, 범법 기업주 단속처벌 강화, 공공부문 규모 및 업무영역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를 묶어서 ‘소득주도 성장정책’ 등으로 포장하여 내놓았다. 단 하나도 미신과 우상이 아닌 것이 없다.

정치•정부 혁신의 핵심을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로 규정하여, 대통령실 규모와 역할 축소(정책실, 민정수석실 등 폐지, 인사검증 업무의 법무부 이전), 책임 총리•장관제, 국무회의 중심 국정운영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책임 총리•장관제는 작동하지도 않고, 인재풀은 전현직 공무원 중심으로 아주 협소해져 버렸다. 결과적으로 국정운영에 필요한 눈과 귀가 닫히고, 손과 발은 잘리고, 뇌 자체가 축소되고, 신선한 피(필요한 정보, 지식, 마인드 등)도 공급되지 않아, 정부의 혼미와 난맥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윤정부가 (직업공무원들이 많이 섬기는) 1987년 컨센서스라는 미신과 우상을 제대로 퇴출하지 못한 소치다.

1987년 컨센서스라는 신전을 떠받친 미신과 우상 혹은 가치•이념과 비전•정책은 거의 다 무너졌다. 썩어 문들어져 푸석푸석해졌다. 그러나 윤정부와 자유보수 진영과 보편 이성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을 과감하게 들어내지도 파쇄하지 않았다. 거대한 신전을 밀어버리고 새시대 컨센서스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3.9 대선으로 기사회생한 대한민국이 내년 총선으로 다시 사경을 헤메지 않을까 하는 광범위한 우려다. 우상을 파괴하고, ‘숨은 신’을 죽이고, 악마의 신전을 부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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