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 신당, 창준위 출범에 부쳐

[한국의희망]이 진짜 한국정치의 희망이 되려면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23.06.29 17:36 | 최종 수정 2023.06.29 17:39 의견 0

지난 6월 26일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양향자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한국의희망] 창준위 발대식이 있었다. 양대 정치독과점 업체가 혁신을 외면하는 모습이 역력해서인지, 정치혁신을 표방한 정치벤처(신당이나 정치연대)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클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한국의희망] 홈페이지( http://www.hopeofkorea.com/)에 들어가 보니 8쪽 짜리 당 소개 브로슈어가 있어서 내려 받아 보았다.

"이제는, 건너가자!" 구호가 참 좋다. 양향자 의원과 최진석 교수 등 대표 발기인 14명을 소개해 놨는데, 면면이 참신하다. 창당 발기인이 1,023명인데(법적 요건은 200명), 40대가 28%, 50대와 30대가 각각 21%라는 것도 꽤 괜찮다. 그런데 좋은 것, 괜찮은 것은 여기까지다.


무엇보다도 최진석 교수의 체취가 강하게 묻어나는, 정말 아름다운 말인 ‘이제는, 건너가자!’라는 창당 슬로건의 의미 내지 내포가 석연치않다.

건너서 도달하고 싶은 지점은 누구나 다 안다. 좋은 정치, 과학기술 패권국가, 제도화된 협치, 투명하고 책임있는 조세제도, 상생과 존중의 노사관계,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등.

그런데 어떻게 건너가지? 그냥 헤엄쳐서 건너면 될까? 걸어서 혹은 뛰어서 가면 될까? 브로슈어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편가르기 안 하고, 진영논리 내려놓고, 대화와 타협하고, 지도자의 품격지키고 그러면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종교에는 강을 건너는데 특별한 의미(은유)를 둔다. 기독교의 요단강은 죽음과 부활의 강이다. 힌두교의 갠지즈강에서의 몸을 씻는 의식과 장례의식은 유명하다. [한국의희망]도 강을 건너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강을 건너는 의식을 멋지게 창조해야 한다.

‘한국의희망’의 최대 리스크는 강과 다리를 건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는 고지를 둘러싼 공방전이 치열했다. 그런데 유럽 대평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다리를 차지하기 위한 공방전이 치열했다.

‘레마겐의 다리’와 ‘멀고먼 다리’라는 영화가 있었다. 중학교 때 봤던 것 같다. 결론 먼저 말하면, ‘이제는, 건너가자!’는 말을 할 때, 피 냄새, 땀 냄새, 포탄 냄새, 죽음 냄새를 맡아야 ‘한국의희망’이 될 수 있다. 그런 냄새를 맡지 못하면 그냥 좋은 말 대잔치를 벌이는 ‘유랑극단’이 된다.


사실 문재인도 남북 불신과 대결의 강을 건너고 싶어했다. 화해, 협력, 평화의 피안(彼岸)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온갖 굴욕도 참고, (아마도) 돈도 주고, 정보도 주고, 우리 방어력도 약화시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 화해, 협력, 평화가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인가? 역대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들이 바보도 수전노도 아니었다. 긴장과 전쟁을 먹고 사는 군산복합체의 하수인도 아니었다. 남북 불신과 대결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북한 세습 수령독재 체제가 만든 지독한 빈곤과 억압과 폐쇄에 있다.

‘한국의희망’이 건너가겠다고 하는, 양대 진영간 소모적 대립, 갈등, 적대, 증오의 강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며,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이념 갈등과 진영 논리의 본질과 연원을 정확히 알아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 민주진보는 상대(자유보수)를 다른 방식으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 청산 척결 궤멸시켜야 할 악으로 간주해 왔다. 특히 문재인정부와 586화석운동권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극단적으로 심해졌다.

인간사회라면 있어야 하고, 있기 마련인 진보와 보수, 급진과 온건의 갈등을 민주-독재, 항일-친일, 애국-매국, 개혁-수구, 평화-냉전(전쟁), 선악, 정사, 정의-불의 세력 간의 대결로 규정하고, 후자를 청산 척결 궤멸 시켜야 할 악으로 간주하니 정치가 전쟁이 되지 않을 수가 있나! 증오와 적대의 정치가 되지 않을 수가 있나! 문재인은 이런 편 가르기도 모자라, 가계소득-기업소득, 노동-자본, 빈자(민중)-부자, 간호사-의사, 임차인-임대인, 프랜차이저 가맹점-본사 간의 갈등도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필연이다.

6.25 침략자는 북한이듯이, 현재 진영 전쟁의 도발자는 자칭 민주진보다. 서로 박터지게 싸운다고 둘 다 잘못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남북 갈등은 남한이 관용과 포용의 마음으로 통크게 "내 탓이오, 내가 잘못했오" 혹은 "남북한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놀아났으니 우리끼리 잘해 봅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민주당과 정의당은 1944년 가을의 독일군처럼, 명분과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고, 시대착오적이념과 이권(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결사 항전 중이다. 후쿠시마(원전과 방류수) 괴담 선동은 그 일환이다. 국회에서는 노란봉투법, 민주유공자법 등을 단독 처리하려고 하고, 바깥에서는 조국 수호대로 나선 교수들을 사회대개혁 뭐시기 조직으로 엮고, 공영방송 노조들도 편집조작, 자막조작 등을 해 가면서 결사 항전을 한다.

그러므로 강을 건너려면, 대화, 타협, 품격 이전에 ‘결사 투쟁’이 필요하다. 투쟁 없이 건너려고 하는 자들은 ‘사이비’다. 물론 투쟁만 갖고는 안된다. 사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과감한 시도를 한 사람이 노무현과 문재인이다. 노무현은 자기 권한을 과감히 던져 문화를 바꾸려 했고, 문재인은 온갖 위선, 독선, 분열, 파괴, 쇼질을 일삼다가 나라를 폭망시킬 뻔했다. 그러니 울퉁불퉁한 구체적 현실을 총화한 숙성된 국가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 함운경과 민경우는 ‘이제는, 건너가자!’라는 아름다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낡은 시대의 종식을 위해, 새로운 시대로 건너가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다.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 파괴적인 적대와 증오가 홍수처럼 흐르는 강을 어떻게 건너냐고? 그것은 함운경과 민경우에 물어 봐야 할 것이다.

양향자 의원과 최진석 교수는 건너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과 싸워야 할지, 어떻게 싸워야 할지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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