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문제는 국회의원의 질문과 대통령 프로젝트다

120대 국정과제 전면 재검토 재설계 해야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승인 2024.05.10 11:37 의견 0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일은 정부를 향해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

국회 포털(www.assembly.go.kr/portal/main/main.do)은 ‘국회소개’> ‘국회가 하는 일’ 메뉴에서 ‘역할과 권한’을 4가지로 정리했다. 입법, 재정, 일반국정, 외교다. 입법은 법률 제정·개정권이고, 재정은 예산·결산권이고, 일반국정은 국정감사·조사권이고, 외교는 초청외교 방문외교 국제회의 참석 등이다.

이를 볼 때마다, 대한민국 정치, 정부, 정당, 국회 및 국회의원의 혼미와 무능의 핵심 원인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한마디로 정당과 국회와 국회의원은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다.

반면에 완전히 지엽말단적인 것을 4대 ‘역할과 권한’에 포함시켰다. ‘(의원)외교’가 그것이다. 외교는 대통령과 정부의 고유 권한인데, 지극히 보조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국회가 왜 4대 과제 중의 하나로 잡았는지? 혹시 의원들의 관광성 외유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원들이 해외에 나가서 하는 일의 실체를 보면 이는 합리적 의심이 아니라고 말 할 수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이면 지자체장및 지방의원과 행정부 공무원도 다 외교가 주요한 역할과 권한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핵심인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일은 정부와 국민과 지식사회를 향해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질문은 곧 국정과제(Agenda)를 설정(setting)하는 것이다. 사실 ‘어젠다 세팅’이야말로 정치인과 국회의원과 경세논객(경세를 연구 고민하는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의 하나이다.

이는 암초와 풍랑이 많은 바다를 헤쳐나가는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를 움직이는 일이다. 국가적 위기·부조리를 개념화하여 정부 대책은 뭐냐? 우리당 혹은 본 의원은 이 위기·부조리의 원인과 대책은 이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질문 형식으로 ‘어젠더 세팅’을 한다. 당연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즉 대통령 프로젝트로 연결되고,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 대한 질의나 질책은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나 정책 토론회 등에서 의원들이 늘 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새삼 대정부 질문 내지 ‘어젠다 세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가? 그것은 질의나 질책이 한마디로 지엽말단이거나 수준 이하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금 민초들과 경세를 연구 고민하는 지식인들은 절박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자살을 우려하고 있다. 저출산, 저활력, 저성장, 고비용, 고물가, 소모적 갈등, 지방소멸, 일자리, 부동산, 주력산업 위기, 4차산업혁명의 도전, 미중갈등, 북핵위기 등. 하나 같이 국리민복에 치명적인 고질병이자 위기들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은 너무나 엉뚱한 지엽말단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엉뚱한 질문은 엉뚱한 대통령 프로젝트를 낳는데 크게 일조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성패는 무엇이 중한지를 파악 해결하는 능력에 좌우

윤 정부의 역대급 총선 참패와 저조한 지지율은 압도적으로 국가적 위기·부조리의 급소를 비껴가는 엉뚱한 국정과제(대통령 프로젝트)에서 연유한다. 이는 한국 정치인의 중핵인 국회의원들의 질문 수준 및 실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실 국가경영 비전과 전략을 연구하는 수많은 연구소들이 안되는 이유도 그 성과물(컨텐츠)의 핵심 소비자인 정당과 정치인의 질문 수준과 질문=국정과제에 대한 연구·고민의 빈약에서 연유한다.

정치 세력과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시대적 소명 이행 여부에 달려있다. 무엇이 중한지를 파악하여, 해결하는 능력 내지 성과에 달려있다. 다시말해 무수히 많은 국가적‧국민적 과제‧위기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가치 간 충돌 시에는 어느 쪽이 더 우선인지를 파악하여, 정치가 운용할 수 있는 자원인 권위, 이념, 법령, 예산, 정부‧공공기관, 공권력, 정보지식, 여론 등으로 중한 것을 앞세우고, 우선 가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관건이다.

무엇이 중한지를 말하려면 무엇이 덜 중한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려면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과제 전체와 저울질해야 할 가치 전체와 가늠해야 할 주체역량 및 지형(정세) 전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과 국회의원의 좋은 질문은 정치 공동체 전체에 대한 관심및 책임감을 바탕으로, 국가적‧국민적 과제·가치와 주객관적 조건 전체에 대한 오랜 대관세찰(大觀細察)이 있어야 가능하다.

△좋은 질문과 '어젠다 세팅'이 한국 정치 풍토에서 왜 어렵나?

그런데 정치인의 좋은 질문 내지 ‘어젠다 세팅’은 대단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풍토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인과 국민의 시야를 좁히고, 역사(기억)와 현실을 왜곡하고, 과제·가치의 우선 순위를 헝클어버리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제국을 이뤘거나 이룬 나라들은 수백 년 간에 걸친 주체적 선택과 전쟁의 경험을 통해 정치, 외교, 군사, 행정, 재정 분야 등에서 국가경영 컨센서스(경제제일, 합리적 상벌, 상무정신, 사회통합, 실용주의, 건전재정 등)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는데, 한국은 이게 너무나 앙상하고 빈약하다.

나라 잃은 설움과 분단·전쟁과 빈곤·기아의 아픔이 국민과 정치권에 각인시킨 부국강병이나 국리민복 증진 의지는 21세기 들어 매우 흐릿해졌다. 빈곤이 해소 되면서 북한, 일본, 미국, 독재, 재벌, 공산주의, 신자유주의, 적폐·주류·보수 등에 대한 공포, 혐오, 적대, 증오, 배척 등 거부·경계 심리가 득세하였다. 다수 국민들은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발전이 아니라 거악에 대한 거부를 시대적 소명으로 부여하였다. 집권 자체, 즉 거악으로 규정된 정치세력의 집권 저지에 큰 의의를 부여하였다.

정치는 점점 사생 결단의 전쟁으로 되었다. 디지털 기술이 열어제낀 개인미디어(SNS) 시대는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를 강화하였다. 미디어 민주화(선택권 강화)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용이하게 하면서, 공론장을 황폐하게 만들고, 종합적, 균형적 역사·현실 인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그 결과 편협한 안목과 왜곡된 역사·현실 인식이 정부의 엉뚱한 ‘어젠다 세팅’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문 정부는 ‘적폐청산’으로 상징되는 운동권적 안목과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면, 윤정부는 ‘기득권 카르텔 청산’으로 상징되는 사법관료 및 경제관료의 안목과 인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무얼 파나?

일반적으로 상인은 돈 많이 벌리는 것을 주로 팔고, 출마자는 표 많이 되는 것을 주로 판다. 그러면 대통령은 무얼 파나? 한마디로 국민들이 아우성치거나,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큰 불의(개혁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주로 판다. 대통령이 제기하는 과제 내지 이슈는 대개 야당, 비판 언론과 논객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초래하거나 시시비비 대상이 되기에,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 확신이 안서는 것을 이슈로 삼기는 어렵다.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과 의료개혁과 부산엑스포 유치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것은 윤대통령이 비교적 잘 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의 자살을 초래하는 위기·부조리라 할지라도 대통령이 잘 알지 못하면 뒷전으로 밀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의 경험, 지식, 문제의식(세상을 보는 프레임)과 가치·과제의 우선 순위와 인맥의 한계와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 정부는 아직도 이 한계와 편향을 인식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고 있다.

△대통령 프로젝트, 원점에서 재검토, 재설계 해야

정부의 성패는 무엇이 중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실제 성과를 내든지, 아니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국민이 이해하고, (힘을 실어주면서) 기다려 주게 만드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정부의 성패는 올라야 할 무수히 많은 산(시대적 요구 내지 해결해야 할 과제) 중에서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정세를 면밀히 타산하여 오르기로 결단한 산, 즉 대통령 프로젝트에 달려 있다. 그리고 동원 가능한 정치적 자원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실제 올라야 한다. 그럴려면 등산 루터(침로)를 잘 잡아야 한다.

시대가 등정을 요구하는 산, 즉 절체절명의 개혁과제로 말하면, 노동·교육·연금의 3대개혁과 의료개혁 외에도, 공공개혁, 규제개혁, 경제·금융·부동산개혁, 조세·재정개혁, 지방자치·행정개혁, 사법(법원·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신문화개혁, 정치(정당, 이념, 리더십, 정치관계법)개혁, 고비용구조개혁, 저출산정책개혁 등 열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들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산을 다 오를 수 없다. 산에 오르기 전에 이 산이 슬리퍼를 신고 산보하는 기분으로도 오를 수 있는 서울 남산인지, 등산화와 일정한 체력이 있어야 오를 수 있는 북한산인지, 산소통과 영하 30도와 강풍을 견딜 야영장비까지 준비해야 하는 에베레스트산인지 등 난이도(윤곽)를 알아야 한다. 동시에 적절한 등정 루터(침로)와 돌발 상황(기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적으로 의료개혁 산으로 올라갈 때 의대정원 대폭 증원 루터는 아마 가장 잘못 선정한 루터가 아닐까 한다. 비유를 달리한다면, 자신이 옮겨야 할 짐이 25톤 덤프 트럭을 필요로 하는지, 구르마와 지게 정도면 되는지에 따라 준비가 완전히 달라진다.

윤 정부와 한동훈 비대위의 말, 인사(공천 등), 법안, 예산, 이슈파이팅 등이 헛심 쓰기가 되어 버린 것은 자신이 받아든 과제 내지 올라야 할 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 있고, 이는 정치권과 지식 사회가 오랫동안 질문을 잘 못던진데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과 국힘당 중진들이 다방면에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위기 전반을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과제의 성격과 어려움을 알면 정무와 인사는 자동으로 된다.

국회 개원을 하면 국회 교섭 단체 대표들이 개원 연설을 할 것이다. 원래 이게 정부와 국민과 시대에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충 그 질문이 그려진다. 야당의 핵심 질문은 김건희, 채상병, 이태원, 방송법, 25만원 등과 관련된 것 일 것이다. 아마 이재명 대표가 윤대통령 앞에서 읽은 A4 10장에 다 들어가 있을 것이다. 교섭 단체 대표 연설의 내용은 그 변주곡일 것이다. 물론 후진 질문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자살일 것이다.

국회를 지배하는 민주당과 조국당이 좋은 질문을 할 것 같지 않다. 아니 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에 사활을 걸고 있기에, 완전히 엉뚱한 질문만 던질 것이다. 그럴수록 윤 정부와 국힘당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과제들을 질문 형식으로 제기해야 한다. 120대 국정과제 등 대통령 프로젝트를 전면적으로 재점검, 재설계해야 한다. 국회가 민주당과 조국당에 의해 지배되더라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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