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그 네 개의 기둥(4) (김병준, 정리 - 김대호, 이준호)

차상미 기자 승인 2013.08.07 10:56 의견 0

-세번째 기둥과 네번째 기둥-

 
세 번째 기둥: 경영능력과 혁신능력
인사권
경영능력, 혁신능력 이것 또한 높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저조합니다. 얼마나 저조하냐공무원들의 직업적 안정성은 굉장히 높습니다. 쫓아낼 수 없습니다. 대통령하고 서울시장을 비교하면 서울시장이 더 어렵습니다. 대통령은 들어가면 우선 많이 데리고 들어가지 않습니까자기하고 같이 있던 사람들을 청와대에만 한 4~500명 데리고 들어가죠. 관료들 빼고도 2~300명은 될 겁니다. 장관이요대통령이 다 임명합니다. 공사, 공단 사장 다 바꾸고요.
서울시장, 국장 데리고 들어갑니까비서실에 가서 400명 500명 데리고 들어갑니까아니지 않습니까정무부시장, 비서나 보좌관 몇 명, 운전기사 등 몇 명이죠. 못 바꿉니다. 명령을 받아야 할 간부들도 대부분 직업공무원으로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보낼 수 없습니다. 함부로 내보내면 재판 걸어서 반드시 이겨서 돌아옵니다. 밀린 월급 다 줘야 됩니다. 그러니 이 공무원이 민간기업 노동자하고는 다르단 말입니다.
또 인사권의 제약이 있으니까 우수한 사람을 뽑아 와야 되는데 우수한 사람을 돈 주고 사오지를 못합니다. 월급도 마음대로 줄 수가 없고. 공무원 보수관련 법과 령에 묶여 있거든요. 그러니 문제가 있지요.
선거
선거도 문제입니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상당한 능력이 있는 양반을 부지사로 모시고 갔어요. 제주지사가 모시고 간 거죠. 그런데 선거 때 되니까 결국 바꾸더라고요. 정무부지사로 데려갔는데 결국 지역사람으로 바꾸더라고요. 저녁에 상갓집 가는 게 우선이지 경영혁신 이거 따질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되게 미안해하면서 자르더라고요. 선거 지나고 다시 보자 그랬답니다. 선거 1년 전, 심지어 2년 전부터 선거체제로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이런 것들이 지역의 인재영입에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거든요.
곳곳에 지뢰
그리고 공무원 입장에서는 도처에 지뢰입니다. 법, 령, 규칙, 지침 등등 많습니다. 움직이면 이 지뢰를 밟습니다. 가만히 있는 게 최고입니다. 단체장이 와서 큰 소리를 칩니다. 나를 믿고 과감하게 해라. 과감하게 해서 나중에 책임은 누가 지는데요날아갈 때는 단체장이 대신 날아갑니까빤한 건을 결제 안 한단 말이에요. 무조건 안 된다는 거에요. 30일 처리기간이 있으면 30일 지나서 해줘야지 그 전에 해줬다간 오해를 받지요. 문제 생기면 통장 조사하지요. 검찰이나 감사원에서 오라 가라 하지요. 주변 사람들 모두 괴로움을 당하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죠. 못 해줍니다.
심지어 30일 다 지나도 안 해줘요. 그 다음에 와서 어필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면, 그 때 그럽니다. 저기 시민단체 좀 들러서 오라고. 그럼 시민단체가 가서 따지고 하죠.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국민권익위원회 같은 데 갔다 오라고 그래요. 그럼 거기 갔다 오고, 국민권익위원회 같은 곳에서 지시나 협조 공문이 오면 그때서야 그것 잘 철해 놓은 뒤 해주죠.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내가 빨리 움직이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지뢰를 밟는단 말이에요. 지뢰를 밟으면 구제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이것이 한국의 행정체계의 한 부분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당했습니다. 제가 굉장히 위험스런 일을 할 때는요. 대통령이 메모를 해줍니다. 나중에 이것 때문에 수사를 받거나 그러면 이 메모를 내 놓아라. 마패처럼.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습니까밑의 사람이
저 같은 사람이야 그만두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하지만 실제 공무원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제가 쓴 책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에도 쓴 이야기인데요. 진대제 전 전통부 장관에게 삼성 사장 시절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물어본 적 있습니다. 두 가지가 크게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첫째는 과거와 미래입니다. 삼성에서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어제 점심 뭐 먹었는지도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앞만 보고 가느라 뒤를 볼 시간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정부에 오니까 모두들 앞은 안 보고 뒤만 보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더라는 거죠. 장관이 아니던 시절의 것까지 국회에서 끄집어내서 뭘 했나 따지고, 감사원에서 감사고요. 자기가 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일이 대답을 하다 보면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없더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실패의 경험입니다. 삼성에서는 추진하는 일 열 개 중에 아홉 개를 실패하고 하나를 성공하면 그것으로 부장 승진도 하고 이사 승진도 하는데 공무원 사회는 아니더랍니다. 아홉 개를 잘했더라도 하나를 잘못하면 그것으로 목이 날아가더라는 겁니다. 실제로 그게 지뢰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공직사회에 지나치게 있거든요. 지금 혁신역량 이것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이런 문제가 붙들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네 번째 기둥: 주민의 참여와 감시
주민소환
마지막으로 주민통제 부분은 지금 어느 정도 자리는 잡혀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 3제도가 다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주민소환까지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주민소환을 채택하는 주가 18개 주밖에 안 됩니다. 참여정부 시절 제가 주민소환제 도입해야 된다고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를 했어요..단체장으로 들어갔는데 주민들이 흔들면 업무를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죠. 그래서 단체장 초기 1년과 후기 1년 동안은 주민소환을 발의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초기 1년은 업무집중을 위해, 끝의 1년은 정치적 이용을 막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발의 요건을 높여놓으니 발의하기 힘들어서 사실 거의 대부분 발의가 안 되고 있습니다. 시도는 많은데 발의가 안 되고 있어요. 물론 하남시의원 같은 경우 발의가 되어 지방의원이 그만둔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주민참여
이 주민통제보다도 더 중요한 게 주민의 기여입니다.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말입니다. 지방정부의 권한도 약하고 예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주민들이 도와줄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가진 시간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지역사회를 위해 내어 놓아주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잘 안됩니다.
미국에서 운영되는 Adopt highway program입니다. 길가에 이렇게 팻말 붙여놓은 곳 많습니다. 40주에서 채택하고 있으니까 거의 대부분의 주가 채택하고 있는 겁니다. Adopt highway, next 2 miles, duncanville high school student council. 던컨빌 고등학교 학생회가 시하고 협의해서 푯말을 세운 겁니다. 지금 이 푯말로부터 2마일은 던컨빌 고등학교 학생회가 책임지고 관리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 사진은 무신론자 연합분들이 주말에 자신들이 관리를 약속한 도로를 청소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만약 저런 일을 지방정부가 모두 한다면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하겠습니까주민들이 스스로 나와서 관리를 합니다.  
시민자율방범대의 모습입니다. 시민이 자율방범대를 만들어 neighborhood watch를 하는 겁니다. 아주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도둑 많이 잡는 경찰이 좋은 경찰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예방하도록 만든 경찰이 좋은 경찰이 되는 겁니다. 예산도 도둑 잡는 데 많이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경찰 교육을 받고 주민들이 스스로 폴리스 아카데미, 경찰학교 같은데 와서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하는데 많이 쓰게 됩니다. 행정의 컨셉 자체가 달라지는 거죠.
앞으로 지방자치를 하시려는 분들께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셔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생산적 자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절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 있어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인센티브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센티브도 별로 없거든요. 미국 사람들은 지역 사회에 봉사하러 나오면 지역 주민들이 인정을 해줍니다. 골목에 그 사람 이름도 붙여줘요. 스미스 로드, 스미스 레인 이렇게 붙여주죠. 우리도 자원은 많습니다. 골목만 해도 괜찮은 자원 아닙니까30년 동안 골목 꽃 길을 가꾼 분께 이름 하나만 붙여드리면 되는 거죠. 길 이름을 붙이는 사소한 것에도 이런 식으로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죠. 하지만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습니다만 지역사회하고 아무런 관련 없는 이름 막 가져다 붙이잖아요. 돈이 없으면 다른 자원이라도 활용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거죠. 찾아 보세요. 많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껏 네 개의 기둥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네 개의 기둥이 다 부실합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쉽지 않겠죠. 자치재정, 기관위임 사무 등등 다른 나라에는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치재정의 문제는 지역균형발전이 안 되어 있는 한국에서 결국 중앙에서 거두어 지방으로 나눠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기관위임 사무는 일본하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인데 너무 오래된 구조적 문제라 국가 전체를 개조해야만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율성 문제 역시 단순히 정치자금, 선거의 문제를 뛰어 넘어 토지소유 형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단체장이 개발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구조이죠. 토지가 지나치게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발이익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웨덴 같은 경우는 1920년대, 1930년대 진보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동안 팔았던 토지를 전부 국가가 사들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만들고 스웨덴이 임대주택을 하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은 개발에 관심이 없거든요. 옆에 백화점 들어오는 것도 싫고 옆에 오피스텔 들어오는 것도 싫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아니란 말이에요. 이런 구조가 우리의 지방자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좋은 지역사회를 만드는데 장애가 되죠.
경영능력, 주민참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토대는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문화적인 문제도 많아 단기간에는 힘들 겁니다.
합리적 분권운동
결론을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이러한 네 개의 기둥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분권운동이 필요하고 공동체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될 사람들이 누구냐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입니다. 지방의회 의원을 나중에 한 번 따로 들여다보십시오. 91년에 만들어진 부천시 담배자판기 설치금지 조례를 예로 들죠. 그 당시에 부천시의회 의원을 했던 이순영의원이나 이런 분들을 제가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뭘 했는가담배자판기설치금지조례를 만들려고 하니까 못 만들게 했단 말이에요. 법령에 뭐라고 되어있는가 하면 연초를 판매하는 자는 자동판매기를 통해서도 연초를 판매할 수 있다는 당시 재무부령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재무부령에 자동판매기를 통해서 연초를 판매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이를 부천시 의회가 조례로 금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죠. 대부분의 지방의회나 지방의원은 여기서 그만 둡니다. 법령에 위반되니 못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그만두고, 덮으면 안 됩니다. 부천시 의회가 당시 칭찬을 들었던 이유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뭘 했느냐길거리로 나갔습니다. 자판기를 통한 연초판매를 허락하고 있는 재무부령 바꾸기 운동을 벌인 겁니다. 시민들한테 서명을 받았습니다. 의사협회에 찾아가서 담배가 청소년들한테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한 의견을 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서 재무부에 이야기 했습니다. 변호사 협회에 찾아가서 청소년 보호법에 규정된 청소년 보호조항, 즉 청소년은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그 조항이 결국 담배자판기 설치를 하게 만든 재무부령과 배치된다는 의견을 받아냈습니다. 결국 6개월 뒤 그 부천시의회 의원들과 부천 YMCA가 중심이 되어 재무부령을 바꿉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합리적 분권운동의 모습입니다.
이런 운동을 해야 지금 우리의 잘못된 부실한 4개의 기둥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나는 법이 정해준 일만 한다. 아니면 어차피 이건 내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닫아버리는 순간, 네 개의 기둥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결국 지방자치는 계속 잘못되는 길을 가게 되죠.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마치겠습니다.
질문
정치적 분권과 정당공천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통령의 권한 문제입니다. 2013년 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못하고 계류돼서 폐기 처리된 게 10,200건입니다. 각 분과의 상임위원회까지 포함하면 15,000개까지 될 겁니다. 국민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법안인데도 불구하고 전부 폐기가 되거든요. 대통령이 국방비 하나만 가지고도 복잡한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걸려 버립니다. 거기다 정치 문제, 당 문제까지 전부 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따라서 이원집정부 체제 속에서 국무총리의 권한을 높여주는 이런 분권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정치적인 분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정당공천제 폐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과거 지방자치 연구소를 하시던 당시 지역색이 배제되어야 할 지방자치가 오히려 지역구도에 함몰되어 있다고 한탄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 이유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정작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정당공천제를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일부의 평가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요
김병준 장관: 첫 번째 질문하신 내용. 대통령의 권한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횡적으로 분산시키는 문제는 오늘 논의와는 조금 동 떨어진 문제이긴 하지만 답변하겠습니다. 저 역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참여정부 때는 제도화는 안 되어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더군요. 책임총리제도 하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정책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정책실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국정과제, 즉 대통령과제만 챙기는 정책실이었습니다. 현안은 총리가 다 해라. 그리고 총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 대통령한테 일일이 보고도 하지 말라. 이렇게 했거든요. 과거에는 비서관들이 금융비서관, 건설비서관 이런 식으로 있었습니다. 참여정부 정책실에서는 다 없애버렸죠. 그런 이름을 달아놓으면 건교부는 건설비서관, 금융위원회는 금융비서관 같이 보고체계가 만들어지니까 다 없애 버린 겁니다. 보고할 곳을 없애 버린다는 취지였습니다. 대신, 정책관리비서관, 정책상황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으로 만들었죠. 좀 모호하죠보고하지 못하게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각 부처들은 그렇지가 않단 말이죠. 보고를 하지 않고, 지시를 받지 않고는 일을 못하겠거든요.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요. 결국 보고를 하는데 이름을 보아하니 정책상황비서관실이 제일 그나마 가까운 것 같거든요. 정책상황비서관실로 보고가 쏟아져 들어오는 겁니다. 정책상황비서관실에 원래는 행정관이 5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두 달 사이에 행정관이 40여명으로 늘어납니다. 대통령이 왜 자꾸 직원 늘리냐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보고가 쏟아져 들어오는데요.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부처가 쓸데없는 보고를 하는지 정리해서 보고하라고까지 했는데도 안 되는 겁니다. 각 부처는 총리실과 이야기해야 하는데 우선 총리실이 결정을 안 해요. 습관적으로 청와대에서 결정했거든요. 하다못해 청와대의 비서관, 행정관의 얘기라도 들어야지. 총리실의 국조실장이나 비서실장 이야기는 쓸모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가 있습니다. 이런 문화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서 참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됐느냐물류사태가 그래서 났습니다. 포항시가 완전히 마비가 되었죠. 그런데 청와대에는 현안을 다루는 부서가 없었거든요. 그러면 누가 해줘야 되는가총리실이 중심이 되어 부처끼리 잘 협의해서 처리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은 거예요. 대통령이 도시가 마비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국무회의에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좀 들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건교부 장관도, 행자부 장관도, 총리도 서로 쳐다보기만 합니다. 물류사태가 어느 부서 소관이죠도시가 마비되었으니 질서에 관한 문제 아닙니까경찰에 관한 문제지요. 그럼 어딥니까행자부죠. 그런데 물류가 뭡니까트럭이 가서 막았거든요. 이건 누구 소관이죠건교부죠. 일이 일어난 원인으로 따지면 다단계식 판매구조 때문에 일어났으니 공정거래 위원회 소관입니다. 서로 그냥 멀뚱히 쳐다보기만 합니다. 다들 당신 일이니 당신이 대답하라는 거죠.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이런 놈의 정부가 어디 있느냐하나의 도시가 마비가 되었는데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대통령으로서는 기가 막혔을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정책실 기능을 바꿨죠. 현안을 챙기는 것으로요. 실장도 현안을 챙길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고요. 결국 청와대가 다시 현안을 챙기는 과거로 회귀했습니다. 대통령 권한을 나누는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연구를 계속 해 봐야 할 일입니다.
정당공천
두 번째, 정당공천 문제입니다. 참여정부 때는 정당공천을 배제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합의를 봤습니다. 저는 정당공천주의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공천하는 것이 당분간은 문제가 있겠다. 최소한 지방의 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자랄 때까지는 정당이 관여하는 것을 유보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최소한 두 세 번 정도는 말이죠. 대통령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여당과 합의를 봤습니다. 여야 간사들께도 이야기하고요.
양당 모두 대체로 폐지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바뀌었습니다. 회의결과 그 동안 정당공천을 하지 않고 있던 기초의원들까지 정당공천을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겁니다. 오히려 강화가 된 거죠. 당시의 간사가 누구였는지는 이야기 드리지 않겠습니다. 정말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이미 당에서 언론을 통해 발표를 해 버렸는데요. 저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정당공천주의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선거를 할 때 보통 우리는 세 가지를 봅니다. 인물, 정책, 정당. 그 중에 정책을 제일 안 봅니다. 정당공천을 없애면 결국 인물 위주의 투표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럼 자칫 학력, 경력 위주로 가면서 우리 사회의 진보성이 더 떨어질까 걱정을 하는 겁니다. 학교가 엉망이라고 자녀들에게 학교 가지 말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학교를 고쳐야죠. 정당이 엉망이라고 정당에 참여 안 하는 것이 아닌 정당을 고치자는 입장인 겁니다. 하지만 도대체 고쳐질 기미가 안 보이니 지방에서 독자정치세력이 설 때까지는 두세 번 정도 유예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입장으로 타협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정당공천제를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으니까요.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간단한 논쟁은 아닙니다.
<끝>
* 본 기사는 2013년 5월 25일 동아시아미래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강연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원문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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