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그 네 개의 기둥(1) (김병준, 정리 - 김대호, 이준호)

김병준(전 청와대 정책실장) 승인 2013.07.17 17:19 의견 0

-지방자치 왜 해야 하는가-

 
지방자치 왜 해야 하는가
제가 요청 받은 주제는 지방자치가 어느 정도 왔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입니다. 먼저 어디까지 왔느냐의 이야기를 가지고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모순되는 말씀을 우선 드렸으면 합니다.
지방자치가 과연 민주주의를 보장할까지방자치 하면 민주주의가 되느냐제 대답은 ‘아니다’ 입니다. 꼭 그렇지 않다. 나아질 수는 있지만 보장하지는 않는다.
위의 그림은 영화 ‘미시시피 버닝’입니다. 많이들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영화의 배경은 미시시피 주에 있는 조그만 카운티입니다.. 남부지역 지방자치의 기초단위이자 중심이죠. 이 카운티 정부 안에 보안관과 시장 그리고 KKK단 등, 소위 말하는 지방의 엘리트 집단들이 과두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흑인들을 죽이고 심지어 이를 수사하는 연방수사관까지 살해합니다. 그 지역의 엘리트들이 똘똘 뭉쳐서 말이죠.
지방에게 권한을 줬는데 그 권한이 지방에서 소수의 권리와 다수의 권리가 잘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과두체제 아래 소수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심지어 사람을 계속 죽이는 형태로 운영되는 겁니다.
이런 과두체제를 부수고 뚫고 들어가서 민주화를 이루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누구냐오히려 뒤이어 파견된 연방정부의 수사관입니다.
영국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봉건시대, 왕으로부터 분권은 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분권이 되었다고 해서 그 권한이 지역주민들한테 골고루 가서 민주적으로 행사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봉건제후들이 그 권한을 누렸죠.
그럼 한국은 어떠냐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이야기 되는 거죠. 여기저기서 지방자치 이야기만 나오면 토호세력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역의 소수 엘리트와 그리고 지방의원들, 단체장들이 엮여져서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가 일어나는 것을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지방자치와 분권이 곧 민주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럼 지방자치하면 행정효율이 높아지느냐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행정 효율이 높아질 수 있죠. 실제로 효율이 높아질 확률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효율성이 반드시 높아지느냐그렇지는 않습니다.
위 그림은 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서 가져온 겁니다. 빨간 선은 국가공무원의 입건사례입니다. 파란 선은 지방공무원의 입건 사례입니다. 국가공무원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지방공무원은 급격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치가 강화될수록 지방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 표는 민선 1기 2기 3기 4기의 단체장들이 입건된 건수들입니다. 민선 4기인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자그마치 48.4%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가 지방자치를 하면 민주성이 강화되고 효율적인 행정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느냐보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당신은 무엇 때문에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느냐민주성을 보장하지도 않고 효율성을 보장하지도 않는데 왜 지방자치하자고 떠들고 다니느냐이렇게 물으실 분들 많으실 것 같습니다. 지방자치를 하자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능론적인 입장입니다. 중앙집권보다는 그나마 낫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입장입니다. 중앙집권이라고 해서 민주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느냐역시 보장 못하죠. 우리가 중앙집권 하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인권이 얼마나 말살이 되었었나요중앙집권 체제도 마찬가지란 말이죠. 그래도 계산해보면 지방자치와 분권이 조금 더 낫지 않겠느냐이런 논리를 가지신 분들이 우리 사회에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저는 기능론자라 부릅니다.
두 번째 입장은 규범론입니다. 따지지 말고 무조건 하자. 왜이유가 뭐냐권력이라는 것은 국민 가까이 갖다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주민 가까이 갖다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그러니까 일단 국민과 주민이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자. 그런 다음, 민주주의도 안 되고 효율성도 엉망이 되면 어떻게 할 거냐그건 그때 가서 방안을 강구하자. 이런 입장입니다. 중앙집권도 지방분권도 둘 다 민주주의와 효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선택을 할 때의 기본원칙이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권력을 주민들에게 주자! 이것이 기본원칙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러니까 지방분권, 지방자치를 하자. 이것이 규범론입니다.
제 경우는 기능론 쪽에 발을 좀 담그고 있기는 하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규범론에 가깝습니다. 권력을 주민한테 돌려 주는 게 기본이니까 일단 그렇게 하자. 이렇게 주장하죠. 가져다 주면 민주화되고 효율화되느냐그건 다른 문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권력을 주민에게 가져다 주면서 이것이 잘 작동해서 민주성을 높이도록, 또 효율성을 높이도록 디자인해야 된다. 이 디자인을 잘못하면 중앙집권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입니다.
기능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지방자치를 해서 단체장이 구속하고 공무원들의 비리가 늘어나고 그 다음에 민주성이 훼손되고 하면 뒤로 빠져버립니다. ‘지방자치 해봤더니 엉망이야.’ 이래요. 저 같이 규범론 입장의 생각이 강한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 문제가 어디서 생겼는가를 따져가고 그걸 고치자는 생각을 하죠.
결국은 선택의 영역입니다. 선택의 영역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농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교회 장로가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 잡혀갔어요. 경찰이 질책했습니다. ‘장로님께서 이러시면 됩니까예수 믿는 분이 이러시는 거 아니에요’ 이러니까 옆에 있던 그 장로의 친구 왈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이 친구가 예수 안 믿었으면 몇 사람 죽였을 사람이야.’ 이러는 겁니다. 진짜 그럴 수 있지요. 말이 됩니다.
이런 건 과학적 논쟁이 안 되는 겁니다. 선택의 문제. 지방분권, 지방자치에 대해서는 백 번을 논쟁해도 반대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반대하고 하자는 사람은 그래도 하는 게 낫다는 얘기를 합니다. 양쪽 다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적인 논쟁은 안 되는 거죠.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선택할 때 그 기준은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권력은 원래 주민 또는 국민이 가져야 된다는 원칙입니다.
 
지방자치 그 네 개의 기둥
   
그런데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느냐아닙니다. 아니니까 앞으로 잘해보자는 거죠. 그럼 뭐가 잘못되었는가
지방자치가 잘 되려면 기둥 네 개가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집을 지으려고 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서까래가 튼튼하고 기둥이 튼튼해야 집이 튼튼하고 오래 갑니다.
첫째 기둥은 자치권, 자치사무의 적절한 배분입니다. 권한이 주어져야 되고 돈도 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되겠죠. 그래야 자치를 하지 않습니까막 주는 것이 아니라 줄 건 주고 안 줄 건 안 주고 해야죠.
안 줄 것을 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외교, 국방 같은 걸 자치단체에 줘서 국방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자치단체장들이 군대를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지요.
노숙자 문제를 한 번 생각해보죠. 노숙자 문제에 관한 궁극적 책임을 지방정부한테 지라고 하면 지방정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헐벗고 굶주린 사람한테 잘해주라고 되어 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시정부가 노숙자 들어왔다고 환영하고, 잘 모신다고 호텔까지 지어서 대접하면 전국의 노숙자들이 다 몰려들 거 아니에요. 이런 것에 관한 권한과 책임은 지방정부에 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중앙정부가 책임은 지되 그런 일을 잘 하는 지방정부에게는 상금을 주면 됩니다. 그래야만 그 사무가 제대로 처리되는 거죠.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스 같은 부촌에 노숙자가 돌아다니면 어떻게 할까요주민들이 야단할 것 아닙니까그럼 공무원들이 이렇게 합니다. 시외버스 터미널 앞이나 동네입구에 기다렸다가 노숙자가 못 들어오게 합니다. 아니면 터미널 같은데 내리면 그대로 가서 왕복차표 아닌 편도차표, 그것도 직행으로 멀리 노스 캐롤라이나 또는 플로리다 쯤으로 가는 표를 끊어서 우유하고 빵 한쪽 사서 보내 버리죠.
대도시처럼 어쩔 수 없이 노숙자 시설을 도시에 짓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 되어도 너무 잘 지어놓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시설이 너무 엉망이면 인권문제가 발생하겠죠. 그러니까 안의 시설은 잘 지어놓되 바깥에는 철조망으로 감아놓죠. 안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 것처럼 해 놓습니다.
서로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전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종의 배반현상이죠. 권한과 책임을 줘도 잘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줘야 할까요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살림을 맡기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살림을 맡긴다고 해놓고 본인이 준 지침 안에서만 하라고 합니다. 지침을 보아하니 전화번호부만큼 두껍습니다. 안의 내용을 보니 국을 끓일 때 소금 몇 숟갈까지 다 적혀 있습니다. 이걸 하나도 어김 없이 지키라고 하면서 말로는 ‘앞으로 부엌일은 네 뜻대로 해라’ 하면 되겠습니까말만 마음대로 하라는 거죠. 자치권이 없는 겁니다.
두 번째 기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방정부의 자율성입니다. 지방정부. 단체장과 의회로 구성되는 지방정부가 지역사회의 특정이해관계 세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자기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특수한 이해관계 집단에게 묶여있다면 처음에 언급 드린 영화 ‘미시시피 버닝’ 같이 되어 버립니다. 울산시가 현대에 묶이고 포항시가 포스코에 묶여 있다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선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소위 Company city, 기업시라고 저는 이름 붙였습니다. 미국 델라웨어 주에서 제가 유학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주, 즉 Company State입니다. 듀퐁이라는 회사가 꽉 잡고 있습니다. 듀퐁은 화학그룹입니다. 이 회사가 그 주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합니다.
델라웨어는 미국 주 중에서 제일 작은 주입니다. 인구가 60만 밖에 안 돼요. 60만 밖에 안 되니까 한 회사가 장악할 수 있죠. 대학도 듀퐁, 신문사도 듀퐁, 은행도 듀퐁, 듀퐁 없이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듀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하원의원, 상원의원도 되기가 힘듭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기업 내지는 특수 이해관계 집단이 지방정부를 좌지우지하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세 번째는 경영능력, 혁신능력입니다. 세상이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려면 보는 눈도 있어야 되고 비전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됩니다. 누가자치단체장이나 의원만을 이야기 드리는 게 아니라 지방정부 전체가 그래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주민의 참여와 감시입니다. 주민이 참여해서 지방정부를 견제할 수 있어야 되고 지방정부에 기여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네 개의 기둥이 바로 설 때 그 위에 올바른 지방자치의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이 각각의 기둥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 본 기사는 2013년 5월 25일 동아시아미래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강연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원문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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