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체제는 가능한가?

김병준(전 청와대 정책실장) 승인 2012.12.22 11:59 의견 0

한국 정치 부실의 구조와 대안(정책강톡-final)

  한심한 정치   감사합니다. 환영을 해주셔서......... 마음 같아서는 길게 좀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만 제 사정이 그렇지 못하네요. 부탁을 받을 때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점을 미리 이야기 드리기는 했습니다. 하여간 짧게 이야기드릴 수밖에 없음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책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겠습니다. 책에 관한 것은 사회디자인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중요한 내용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대선정국과 대선 이후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으면 합니다.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릴까요아니, 무거운 질문인가이번 대선이 얼마나 만족스러우십니까저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다들 그러시죠단적으로 후보와 정책을 한번 보시죠. 오해의 소지가 있겠습니다만 공장이 좋아야 생산되는 제품도 좋습니다. 잘못된 공장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겠습니까우리의 정치권과 정치과정이 사실은 이런 잘못된 공장과 같습니다. 대단히 부실한 공장이죠. 어느 한 구석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고요.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리가 없죠. 정책이나 후보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스스로 만든 제품이 시원찮으니까 자기 공장 제품도 아닌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기 것이라 박박 우깁니다. 당에 있지도 않은 사람, 정치하지도 않던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마치 자기 당에 있었던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내세우죠. 건강 강의 잘 하고 다니던 황수관도 데리고 가고, 연기로 수많은 사람을 웃기고 또 울리던 최불암도 끌고 가고.......... 급기야 주요 선거의 후보도 자기공장 밖에서 끌고 옵니다. 박원순도 데리고 가고, 문재인을 앞세우기도 하고........ 제품 품평회를 하는데 남이 만들어 놓은 제품을 가지고 나가는 꼴이죠. 라벨만 붙어 있으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들이 만든 제품은 자기들 제품이 아니라고 우깁니다. 제대로 된 나라 어디가 우리처럼 이렇게 선거 때만 되면 물갈이란 이름으로 현역의원을 3~40%씩 잘라 냅니까공장 제품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3~40%를 불량품이라 하는 겁니다. 이 정도 불량률이면 공장 문 닫아야 하지 않나요스스로 불량품이라 잘라내면서 그런 불량품 양산한 데 대해 제대로 사과 한 번 하던가요도마뱀 꼬리 자르듯 국민을 기만합니다. 십자가를 지우는 거죠. 심지어 당대표를 지낸 사람들이나 당의 상징적 인물들까지 잘라내면서 말이죠. 잘라 낸 자리에 새로운 인물들이라 하여 새로 공천을 합니다. 색깔이나 모양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팔릴 것 같으면 무조건 끌고 옵니다. 그 속에 기존 제품들을 섞어서 손님들 앞에 내어 놓죠. 기업이 분식한다고 욕을 하는데, 이건 분식 아닌가요짙은 화장으로 생 얼굴 감추고 나서는 꼴 아닌가요     그리고서는 상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거죠. 온 국민을 분노와 대결의 장으로 동원을 합니다. 답답한 것은 국민들도 어느 새 이러한 분노와 대결에 동원이 됩니다. 평소 우리 정치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에 ‘네 편’ ‘내 편’ 하며 감정의 골을 키워 갑니다. 공장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뒤로 가 버리고 없죠.     이런 구도에 뭘 그리 기대하겠습니까나중에 다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만 일부에서 ‘2013년 체제’ 이야기를 하죠. 그러나 저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이기든 그리 쉽게 오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정치를 통해 뭘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대선 구도   대선구도에서 나오는 정책들 한번 보십시오.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특히 경제 사회적 환경은 정말 어렵습니다. 흔히들 위기라 하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 아래에는 또 다시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구조적 변화가 흐르고 있고요. 우리 정치권이 이에 대한 이해가 있어 보이던가요큰 그림의 프레임웍을 가져 보려는 노력이 있던가요이것저것 귀에 닿는 솔깃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이거 해 준다, 저거 해 준다 하는 이야기들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습니다. 기술적으로야 가능하죠. 돈 집어넣고, 필요한 법률 통과시키고 하면 되죠. 문제는 그걸 몰라서 그동안 못하고 있었습니까못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역사와 사정, 그리고 정치경제적 구조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데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 있나요어려우니 그만 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약속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온 국민을 저주와 분노의 장으로 끌어 들이지도 않을 것이고요.   선거가 끝났다고 생각해 보죠. 당선인이 나오고, 온 나라가 그 당선인을 쳐다봅니다. 특히 공직사회와 정치권은 더욱 그러죠. 그런데 저 양반이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끌고 가지큰 틀의 프레임웍이 단단히 갖춰져 있으면 공직사회도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그에 적응합니다.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소통의 기반은 그만큼 강해지는 거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러한 이해에 따라 자율적이지만 통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 그렇게 단단한 프레임웍이 있어도 머리를 넘어 가슴으로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걸립니다. 퍼져 나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게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예컨대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데, 도대체 이를 위한 산업구조 개편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글로벌 분업체계나 자유무역협정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갈팡질팡하는 거죠.     게다가 이번 대선의 경우 후보들도 특이합니다. 자신의 독자적인 성공스토리가 없거나 약한 후보들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독자적인 성공스토리가 없거나 약한 최초의 대통령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이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태우’라 불렸던 노태우대통령만 해도 목숨을 건 결정을 한 경력은 있죠.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그 아버지의 후광이 큰 인물이 후보가 되어 있고, 노무현대통령의 짙은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이 후보가 되어 있습니다. 경쟁력 없는 우리의 정치가 온 국민을 박정희와 노무현의 대결구도로 끌어들이고 있는 겁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추한 모습을 박정희와 노무현의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꼴이기도 하고요. 비겁하고 치사한 일이죠.     자신의 스토리가 약한 후보들이다 보니 그 정치적, 정책적 정체성을 알기도 힘이 듭니다. 어디까지가 박정희고 어디까지가 박근혜인지, 또 어디까지가 노무현이고 어디까지가 문재인인지 분간이 안갑니다. 국민이나 공직사회가 국정의 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적응하는데 그만큼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성공의 스토리가 약하다는 사실은 또 다른 걱정을 낳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한 경력이 그만큼 적다는 점입니다. 후보들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 분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정치가 문제이지 이 분들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정부를 운영하고, 결정행위를 하다보면 몸이 떨릴 정도로 겁이 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한 번의 결정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죠. 개인적으로는 죽고 싶을 정도의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일도 있고요.     책임 없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편합니다. 얼굴이 좋지 않습니까. 왜 좋으냐(웃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큰 부담 없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요. 책임질 일이 없는 거죠. 내가 결정해도 크게 다치는 사람도 크게 덕 보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나 정책적 결정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동시에 좋아하는 정책은 없습니다. 자연히 결정행위에는 언제나 비판과 비난, 그리고 부담이 따릅니다. 이런 행위를 매일같이, 때로는 5분이나 10분 안에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직업이고요.     제가 정책실장을 했습니다만 정책실장만 해도 도망갈 자리가 있습니다. 대통령께 보고하고 승인을 받은 사안이라 하면 되죠. 장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부담이 되는 결정은 청와대에 보고하거나 지침을 받으면서 도망가기도 합니다. 나중에 말썽이 되거나 지나친 부담이 되면 청와대에도 보고한 사안이라 하면 됩니다. 결과가 좋으면 혼자 했다고 해도 되고요. 회고록에도 자신이 이 문제를 두고 얼마나 과감한 결정을 했는지를 자세히 쓰기도 하죠.     그러나 대통령은 피할 자리가 없습니다. 무조건 책임져야 됩니다. 몸이 떨릴 수 있는 결정들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독자적인 성공의 스토리가 중요한 거죠. 그러한 결정행위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그 분명함을 더 잘 알 수 있고, 결정의 속도도 느리지 않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드리는 이야기입니다만 후보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새누리당은 박정희대통령을 넘어서야 하고, 민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을 넘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어떻게 하면 이 분들을 넘어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으로 국민 앞에 서느냐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래야 새로운 시대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편리한 대로, 아니면 이기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가면을 앞세워 국민을 갈라놓는 게 정치여서 되겠습니까     잘못된 정치개혁 논의: 안철수 현상     정치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많은 사람들이 묻고 답합니다. 당연히 한심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듣는 순간 짜증이 납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이 곧 정치개혁이다.’ ‘이기게 해 주십시오. 새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누가 이기면 새 정치가 시작되고, 누가 앞장서면 새 정치가 됩니까     정치가 제대로 되게 하자면 무엇이 제대로 되는지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런 그림이 있습니까또 여기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얼마나 깊을까요이 부분에서 할 수 없이 안철수교수의 이야기를 좀 해야 되겠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안철수현상이 보여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원은 안철수교수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왜새로운 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없는 분이 ‘챔피언’으로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철수현상이 무엇이겠습니까기존의 정치가 싫다는 것 아니겠습니까새로운 정치를 하라는 것이고요. 국민들은 지금의 정치가 그냥 싫은 겁니다. 그래서 불편한 심기와 함께 새로운 정치를 향한 희망과 바램을 내어 놓는 겁니다. 정확한 답까지 내어 놓는 것은 아니죠. 꼭 그럴 필요도 없고요. 답을 내어 놓는 것은 정치권이나 지식인, 그리고 지도자들의 몫이죠.     안철수교수가 그러한 국민적 요구, 즉 안철수현상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을까요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민도 깊지 못했던 것 같고요.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 것이 보이죠. 하나는 내어 놓은 안이 국회의원 수자의 감축 등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점은 길게 이야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민주당과 단일화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안철수현상은 ‘안철수대통령’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권교체 그 자체도 아니었고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 그 자체를 바라기도 했죠. 하지만 그것은 정권교체가 새로운 정치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안철수현상에 대한 답은 오히려 지금 이 상태로는 정권교체를 해도 새로운 정치의 장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도 되기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고요. 그리고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에 앞서서 말입니다.     민주당과 대화를 함에 있어서도 이런 부분이 앞서야 했습니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어 놓고 이러한 대안을 받을 것을 강요해야 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과 정권교체에 관한 생각, 그리고 단일화에 대한 생각이 먼저 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어떠했습니까대안은 설득력이 떨어졌고,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를 논의의 중심으로 하는 단일화 논의가 앞서 갔습니다. 개혁의 대상이기도 한 기존 정치세력과 말이죠. 후보가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주변에서 권하는 전술적 계산과 판단이 앞서 가게 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대통령이 못 되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새 정치의 화두를 꺼내 보지도 못하고 넘어져 버린 것이죠. 아마 대통령이 되어도 ‘새 정치’ 혁명은 실패했을 겁니다. 그림이 없는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악담 같지만 그나마 일찍 넘어진 것이 다행입니다. 대통령이 되어 넘어졌다면 국민들에게 더 큰 좌절을 맛보게 했을 겁니다.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고민은 여러 각도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하나의 예를 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는 깊고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함부로 결론 내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이야기도 짧은 생각의 한 쪽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사람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누가 되면 새 정치가 시작되고 누가 이기면 새 정치가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환경 등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판단, 그리고 정확한 계획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지요.     특히 노무현대통령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대선이 끝나면 결과와 관계없이 다시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 주었으면 합니다. 지역감정의 해소와 대연정의 문제, 책임총리의 문제, 개헌의 문제, 내각제에 대한 생각, 개방성과 다양성의 강조, 관용의 문제 등, 그 분이 고민했던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라 했고, 또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지 말라 했는지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새 정치에 대한 고민과 구상이 그 속에 모두 있습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고민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할까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가운영은 결정의 연속입니다.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정이 합리적으로, 또 시의적절 하게 내려져야 하죠. 그런데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결정의 속도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합리성 또한 점점 더 떨어지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단편적이기는 합니다만 의회, 즉 국회의 문제를 잠시 짚어보죠. 사실 의회 자체가 농경시대의 유물입니다. 그래서 모이는 것도 추수 끝나고 모여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 했죠. 요즘과 같은 지식경제체제에는 잘 맞지 않는 시스템이죠. 무엇보다 정책문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회가 생성되던 농경시대나 그것이 발전해 왔던 초기 산업시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우선 정책문제의 수가 달라졌습니다. 상정되는 문제의 양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겁니다. 미국 의회만 해도 남북전쟁 이전에는 상정되는 법안의 수가 불과 몇 개였습니다. 그 몇 개를 가지고 몇 달씩 논의하곤 했죠. 그런데 요즘은 다르죠. 수많은 법안이 올라옵니다. 그것도 엄청난 경쟁을 통해서 말이죠. 올라오지 못하고 사라지는 정책문제들이 훨씬 더 많죠.     또 있습니다. 정책문제의 구조도 매우 복잡해 졌습니다. 농경시대나 초기산업사회는 문제와 문제가 얽혀있는 게 적은데 지금은 온갖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노동문제는 환경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환경문제는 경제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이걸 해결하면 저게 터지고, 저걸 해결하면 이게 터지죠. 이해관계 구조도 훨씬 복잡해 졌고요.     또 요즘의 문제는 그 해결에 있어 신속성을 요구하는 게 많습니다. 빨리 해결해야 됩니다. 길게 시간을 끌 수가 없어요. 또 있습니다. 해결에 있어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도 많습니다.     자, 어떻습니까정책문제가 대량화 되었죠, 구조는 복잡해 졌고요. 게다가 해결에 있어서는 신속성과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회제도가 생겨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거죠. 이런 상황에 의회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우선 대량화 문제부터 대응을 못하죠. 국회가 일사불란한 군대조직이 아니지 않습니까심사와 숙고의 장이고 논의와 타협의 장입니다. 국회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더 이상 국회가 아니죠. 물론 국회 나름대로 대응을 하기는 했죠. 어떻게 하느냐옛날에는 본회의 중심으로 운용되던 것을 상임위원회 중심 구조로 바꿨죠. 본회의 중심으로 운용하면 한 문제밖에 못 다루지만 상임위원회 중심체제로 운영하면 동시에 상임위원회 수만큼 처리를 할 수 있는 거죠.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 본회의는 대충 그냥 통과시키는 겁니다.     상임위원회 중심체제로도 감당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소위원회 중심체제로 움직이죠. 소위원회 통과하면 상임위원회를 그냥 통과하고, 또 본회의도 그냥 통과하는 겁니다. 본회의에 참석한 다른 상임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은 그게 무슨 안건인지도 모르고 그냥 통과시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문제를 만들까요. 결국 소위원회나 상임위원회 소수 국회의원이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이해관계 세력들이 그냥 두겠습니까국회의원 전체라면 엄두를 못 내겠지만 몇 명의 국회의원이야 쉽게 포섭을 해 버립니다. 로비집단이나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또 이들에 포섭된 관료조직까지 이를 위해 맹렬히 움직이게 되는 것이고요. 결국 여기저기서 관료조직과 국회의원 그리고 이해관계 세력과 법무법인 등이 연계된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 또는 철의 사각형 등이 수없이 형성되는 거죠. 정책과정의 합리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요.     신속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국회가 신속하게 움직이면 국회가 아닙니다. 전문적인 것도 마찬가지죠. 보강이야 하죠. 스탭조직을 강화해 가면서 말이죠. 실제로 전문인력들이 많이 보강되었죠. 입법 보좌기구도 생겨나고, 또 강화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국회 쪽의 테크노크라트들이 관료조직의 테크노크라트와 연합을 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이들이 국정을 주도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요.     이런 일반적 환경 위에 우리 국회는 그 정치적 특성으로 인한 모순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또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국회의원들은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었습니다. 거수기 노릇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죠. 어떤 권한이냐무엇을 추진하기 위한 권한은 없어도 못하게 하는 권한은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거죠.     권한이 강해진데 비해 책임은 별로 없습니다. 국정이 잘못되면 대통령에게 십자가를 씌우거나 동료의원들에게 그 화살을 돌리죠. 대통령을 사실상 쫒아 내기도 하고, 공천혁명 운운하며 동료의원들을 잘라내죠. 당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요. 그래서 국민들은 또 속아 넘어가고요.     빠져 나갈 구멍이 곳곳에 있는데 굳이 합리적 결정을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이유가 있을까요적당한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새로운 인물의 영입을 통한 분칠, 상대에 대한 분노 유발 등으로 연명을 하는 거죠. 당내 갈등만 부추길 정책논쟁은 할 이유도 없고요.     어떻게 하면 국회의 구조적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을까또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람 바꾸는 것을, 아니면 특정 세력이 이기는 것을 정치개혁의 출발로 주장해서도, 또 그렇게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고 어쩌고 하는 식의 안철수식 정채개혁안은 더욱 우스운 일이 되는 것이고요.     의회제도 자체의 문제는 뒤로 하고 현실적인 문제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들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막아 버릴 수 있을까노무현정부가 잘못 되었으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은 망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명박정부가 잘못 되었다면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도 망해야 마땅한 거죠. 이게 안 되니 도덕적 해이야 발생하는 겁니다. 정책정당으로서 발전이나 합리적 의사결정 역량의 제고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고요.     결정의 속도와 관련하여 대통령제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큰 과제입니다. 내각제 국가에 있어서는 내각의 결정의 곧 의회의 결정이 되고, 의회의 결정이 곧 내각의 결정이 됩니다. 한 라운드로 결정행위가 끝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행정부 한 라운드가 있고, 이후 다시 국회 한 라운드를 돌게 됩니다. 이 두 라운드 모두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대립과 갈등이 심각히 반영되고요. 빠른 결정이 내려질 수 없죠.     참여정부 시절 조사한 바에 따르면 행정부에서 시작한 의제가 행정부 결정을 거쳐 국회를 통과한 후 집행단계에 이르는 기간이 평균 35개월, 즉 거의 3년 걸립니다. 이러고도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요대통령만 잘 뽑고 국회의원만 잘 뽑으면 나라가 잘 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제가 가끔 하는 말입니다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다 함께 와도 안 될 문제입니다.     한두 가지 문제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우리의 현실과 관련된 문제만 해도 고민이 깊고 또 깊어야 되겠지요. 예컨대, 이런 건 어떨까요즉 국무총리를 여당의원들이 선출을 하게 하여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하는 겁니다. 꼬리 자르기와 분칠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차단되지 않을까요     또 이런 건 어떻습니까속도의 문제와 관련해서 분권을 강화해서 중앙정부의 의사결정 부담을 줄여주는 겁니다. 지방으로 결정권을 분산하면 그만큼 빠른 속도의 결정이 이루어지고, 또 상호 경쟁과 실험을 통해서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한두 가지 예를 든 겁니다만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고민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좀 더 크게, 좀 더 깊이 말이죠.     2018년 체제를 향해     대선을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올바른 정책논의나 개혁논의는 뒤로 한 채 일단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판을 칩니다. 양쪽 모두 자신들의 승리가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 합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 승리와 새로운 세상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민의 깊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흔히 대통령이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들 대통령선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대통령 권한이 작지 않습니다. 특히 인사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도 청와대 인사위원회 멤버였죠. 인사를 하다보면 웬 자리가 이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주 인사를 하는데도 인사안이 끝도 없이 올라오니까요. 장관을 비롯한 기관장들이 할 인사까지 청와대가 챙기는 경우도 있고 하니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의 힘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개혁과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교육전문가들도 계신데, 교육문제만 해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까요안 됩니다. 온갖 시비가 다 걸리고, 결국은 큰 개혁이면 큰 개혁일수록 좌초하고 말죠.     때로 만신창이가 됩니다. 종합부동산세 신설하느라 대통령이나 그 참모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기억하시죠. 저도 죽다가 살았습니다. 제 인생에 낙인이 찍히기도 했고요. 지금도 저를 보고 세금폭탄 이야기한 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한 말 아니죠. 여기저기서 세금폭탄 이야기를 하기에 이걸 가지고 세금폭탄이라고 하느냐 했더니 ‘세금폭탄 아직도 멀었다’는 기사가 나간 것이었습니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기사를 얼마나, 또 어떻게 이용했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이런 일들로 국정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번 흔들리면 국회의원들은 도망을 가죠. 여권부터가 분열되는 겁니다. 당청갈등에 서로 삿대질 하고, 결국은 당명을 바꾼다 만다 하고, 대통령을 출당하느니 마느니 합니다.     이런 구도를 그대로 두고 온 국민이 대통령선거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정책적 토론이나 정치개혁의 밑 그림은 뒤로 한 채, 상대를 죽이기 위한 온갖 네가티브 공세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좋은 겁니까잘못된 정치권이 잘못된 싸움을 하면 이를 바로 잡아야 할텐데, 방송도 신문도, 지식인도 누가 이기느냐에 온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대선 판을 보고 있는 게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입니다. 이번 선거가 지나고, 다시 정치가 혼탁해지고, 그래서 국정이 어려워지면 누가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이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나 환경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생길 것이란 믿음입니다.     백낙청 선생님이 2013년 체제를 이야기하십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2013년 체제는 오지 없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정치에서는 새로운 체제는 오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논의 구조에서는 만들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이 지나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정치의 씨앗이 될 것이다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2013년 체제는 아니지만 2018년 체제는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새로운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과 고민은 넓고 깊어야 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세력이 집권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이런 저런 전술적 수단으로 특정 세력을 권력을 중심에 세우는 그러한 노력 정도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런 천박한 논의를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논의, 의회주의와 정당체제의 구조적 한계, 대통령중심제의 가능성과 한계, SNS를 비롯한 기술의 발달과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 지방분권과 지방정치의 개혁 등, 넓은 영역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모두 올바른 고민으로 2018년 체제의 성립을 위해 노력해 갔으면 합니다. 예정된 시간만큼 말씀을 못 드리고 짧게 마감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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