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 파행, 부실, 부패 사태의 시사점

정당의 민주화와 정당 간 경쟁체제의 선진화 없이 지방자치분권은 공염불이다.

김대호 승인 2023.08.29 12:38 의견 0

새만금 잼버리의 파행 및 부실과 속속 드러나는 부패를 보면서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게중에는 지방자치제 폐지, 즉 1995년 이전처럼 지자체장 임명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지방자치분권 운동을 해 온 전문가·운동가들은 침묵하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구조적 문제지만, 실효성있는 대안을 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만금 잼버리를 통해 불거진 문제는 한국 정치(민주주의)와 정당의 문제다. 동시에 예산을 편성하고, 사업을 집행하는 지자체와, 예산을 할당하고 사업을 승인하는 국가(중앙정부) 간의 권한과 책임, 혜택과 부담, 이익과 비용의 불일치문제다.

새만금 잼버리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 모순을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지역·지방 간 세원(稅源) 격차와 발전 격차 때문이다. 단적으로 주민은 거주하는 곳과 생산·소비하는 곳이 다른 경우가 많다. 거주하는 곳에서는 소득세·주민세를, 소비하는 곳에서는 소비세(부가세)를, 생산하는 곳(본사 소재지)에서는 법인세를 걷는다. 이로인한 세원의 극심한 집중과 불균형 때문에 국가가 지방세가 아닌 국세 형태로 많이 걷어서, 어떤 공식 또는 사업 평가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사업의 성격상 국가가 주로 돈을 대지 않으면 안될 사업도 많다. 공항과 국제행사가 대표적인데, 혜택과 부담의 불일치가 극심한 사업들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지역간 발전 격차, 특히 호남·전북과 부산 등의 낙후를 명분으로, (지방 토호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역 주민의 총의로 이런 국가예산 약탈적 사업을 밀어부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념이나 여야를 초월하여 현실정치인들은 이를 거역하기 어렵다.

정당간 경쟁시스템이 선진적이면, 다시말해 후보자들이 과거(업적) 평가를 제대로 하고, 미래 비전을 놓고 다투고, 유권자들이 거기에 잘 반응하면, 더 나아가 정당내 경쟁시스템과 교육훈련시스템이 선진적이면 보다 유능하고 양심적인 지자체장을 만들어 낼 수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1987년 이후 조직내 민주화가 완벽히 비껴간 곳이 정당이다. 정당 간 경쟁체제도 작동하지 않는 곳도 너무 많다. 영남과 호남은 사실상 1당 지배체제다.

문제는 복잡해도 해결 원칙은 간명하다. 권한과 책임, 혜택과 부담, 이익과 비용의 불일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 내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자치는 자유를 지키는 핵심 수단이다. 권력을 최대한 주민 가까이 가져가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고속교통망과 정보통신기술(ICT)에 의해 시공간이 축소되고,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권력을 주민 가까이 가져가는 일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많은 지자체가 공무원과 토호들에 의한 공직과 예산의 사적 전용 행위가 만연하다고 해도 지방자치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권력을 주민 가까이 가져가야 한다. 지방자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자유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는 주민의 눈과 귀와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서 공공재를 생산하거나, 자신이 소비자 선택권과 심판권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에서 생산=구매하는 것이 최선이다. 개인〮가족과 마을이 직접 생산하기 힘든 공공재를 비용 대비 편익을 엄밀히 따져, 자유〮권리 위임과 의무〮부담 이행 계약에 따라서 적절한 대리인, 기관, 제도에 생산 의뢰하는 것이 보충성 원칙의 핵심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은 자신의 자유, 생명, 재산 등을 국가(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공기관), 성왕(성군), 성인, 위인, 수령, 대통령 같은 존재에게 책임져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유, 생명, 재산 등은 가능한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개인(주민)- 마을- 지방정부- 중앙정부- 국제기구 간에 보충성 원칙과 비용편익을 엄밀히 따진 사회계약에 의해, 각자의 권한과 책임, 권리와 의무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지방이 각자의 특장점을 발휘하여 발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분권은 국가(중앙)에서 지자체(지방)로 권한과 책임을 이관하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 및 지자체의 권한과 책임을 시장, 사회(자치적 결사), 개인으로 이관·이전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지자체로의 분권 이전에 지자체에서 주민으로의 분권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방분권이 아니라 주민자치가 먼저다. 지난 30년 동안 자조-참여-자치(자율책임) 정신으로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주민 자치’로서의 ‘지방 자치’ 논의는 뒷전으로 가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 공무원의 재량권 확대 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지방 분권’ 논의가 전면에 와 버렸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앙정부가 가진 권한과 책임(예산, 인사, 특별행정기관 포함)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지방분권 전에 지방정부(지자체장과 공무원)가 가진 권한과 책임을 주민에게로 이전해야 한다. 교육청(교육자치체)이 행사하는 권한과 책임도 지역 주민과 학부모, 단위 학교, 적정한 교육 자치체로 이전해야 한다. 요컨대 권한보다 책임이 먼저고, 지방분권보다 주민자치가 먼저고, 지자체로의 분권보다 주민(소공동체)으로의 분권이 먼저다. 분권은 권한뿐만 아니라 책임의 이전이기에 실제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책임을 물어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를 응징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근본적으로 광역은 연방국가의 주처럼 더 크고 강하게, 기초는 실질적인 주민자치가 가능하게 지금보다 훨씬 작고 유연하게 해야한다. 시험삼아 제주특별자치도부터 선진국 주 정부 수준으로 자치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훨씬 많은 특별자치시, 특별자치군, 특별자치섬, 특별자치면(面) 또는 리(里)도 만들고, 대도시에서는 특별자치동, 특별자치 아파트단지 실험도 해야 한다. 광역은 공공, 노동, 교육, 경제·규제 관련 정책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선진국 주정부 수준의 자치권(인사조직권, 입법권, 재정권 등)을 갖되,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단적으로 부실기업이 임직원을 대량해고 하듯이, 정책 실패로 지자체 파산시 공무원의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행정체계의 단층제, 2층제, 3층제도 연방정부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받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한다. 당연히 헌법, 선거법, 정당법을 개정해야 한다. 출발은 정당의 민주화·분권화와 정당 간 경쟁체제의 선진화다. 이것없이 지방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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